무언가 모은다는 건 세상을 넓힌다는 것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
시험이 다 끝나면 아이들은 자유롭게 무얼 해도 된다. 타인의 시험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모든 행위는 허용한다. 초등학교에서 내신이 중요하지 않으니 딱히 문제될 것은 없지. 학원 숙제를 하는 아이, 도서실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아이, 그냥 엎어져서 자는 아이. 뭐, 화장실을 가는 아이마저 그냥 허용해 준다. 이미 시험지는 냈고, 뭐 별 일 있을까? 그런데 한 아이가 꺼낸 파일철이 신기하다.그 옆에 있는 아이도 신기했는지 눈이 반짝인다. 아무리 시험지를 냈지만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보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했는데...... 빽빽이 모여져있는 포켓몬스터 띠부띠부씰을 보는 순간 나도 눈이 반짝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곤 갑자기 드는 생각. 이걸 왜 이녀석이?
포켓몬 빵을 얻기가 쉽지 않을텐데?
알고들 있겠지만 띠부띠부씰을 모으려면 포켓몬빵을 먹어야 하고 그걸 먹으려면 치열한 편의점 쟁탈전(?)에서 승리해야 한다. 그런데 얼핏봐도 한 50장 가까운 저 전리품을 얻기까지 그 수고가 녹녹치 않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걸 아는 사람들에겐 눈이 휘둥그레 질 수 밖에 없지.
알고 보면 나도 열심히 무언가를 모았던 것 같다. 딱지도 모았고, 구슬도 모았지. 어렸을 적에는 건담백과를 보면서 프라모델을 다 사서 조립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동네 문방구에서 프라모델 하나 사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싸구려 프라모델 하나 조립하고는 얼마나 좋아했던지. 나중에 보니까 그 프라모델에 색칠하고 그걸 전시하는 디오라마 같은 장르(?)가 있는 줄 몰랐다. 그 때 열중했으면 내가 오타쿠가 되어 있었겠지? 아무튼 소년때에는 그런 수집욕(?)정도는 있어야 정상이라 생각했다. 지금 아이들도 별반 틀린 건 없겠지.
언제부터 모았어?
와 몇 개나 모은거야?
여기서 제일 비싼 게 뭐야?
와 이어 5만원이나 해?
다 팔면 도대체 얼마야?
결국 돈인가
비싼거? 5만원? 빵은 다 똑같은 가격 아닌가? 이크. 요즘 띠부띠부씰도 거래한다는 걸 얼핏 들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내가 좀 순진했나 보다. 리셀러(되팔이)들도 많고 당근도 유행인 지금 굳이 저걸 예뻐서, 혹은 호기심으로 모은다는 건 너무 순진한거지. 지금은 수집욕이라고 불리웠던 것들도 가격을 매길 수 있는 시대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돈이 안되는 걸 모으라고 할 수가 있는지.
얘들아, 선생님이 어렸을 때에는 씨앗을 모았단다. 수박 먹고 수박씨, 포도먹고 포도씨, 봉선화 씨도 모았고, 해바라기씨도 모았지. 알고 보면 콩도 씨앗이고 옥수수도 씨앗이야. 잘 보관하면 다음 해에 심어서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이번 여름방학 과제로 씨앗모으기 해 보면 어때?
선생님, 가게에 가면 많이 팔아요. 집에 상추씨도 있고, 꽃씨도 있어요. 그걸 모아오면 되는 건가요?
에이 귀찮아요. 방학때에는 놀아야줘.숙제를 또 내주시고 그래요.
모은다는 것
무언가를 모으는 행위는 그 자체로 참 재미있다. 내 것이라는 소유욕이 생기면서 나의 영역을 늘리는 행위다. 내 것이 늘어나면서 내 세계가 늘어날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무언가를 소중히 생각하고 나만의 것을 갖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터넷, 미디어들이 발달하면서 너무나도 쉽게 내 의미를 평가당하고 있다. 결국 가격으로 남들에게 정확하게 평가받지 않으면 그 의미를 잃는다. 그래서 씨앗을 모으는 일, 종이학을 모으는 일, 다양한 지우개를 모으는 일들이 의미 없어진다.
경험이 커나간다는 것
내가 무슨 종자박물관을 만들 것도 아닌데, 씨앗을 모으면 얼마나 모으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우리 반 아이들 속에서 내가 가장 많이 모았다면 그것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다. 그리고 학교는 그런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 작은 사회 속에서 성공하는 경험, 존중받는 경험, 그리고 내가 소중할 수 있는 경험. 학교가 너무 크다면 교실에서라도.
방학숙제로!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 때에는 무시하고라도 숙제를 내줄까 보다. 벌써부터 아이들의 원망소리가 고막을 때리는 중이지만, 뭐 어떠랴. 숙제이긴 한데, 꼭 해오지 않아도 되는 숙제. 검사는 하겠지만 나무라지도 않는 숙제. 채점을 하지 않으니 평가에도 들어가지 않는 숙제.
과연 이런 숙제를 해 올 친구가 있을까가 걱정이지만. 얼마나 내가 잘 꼬시느냐가 관건이겠군! 이 또한 내 능력이겠지. 100명 중에 한 명이라도 해 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