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체험 학습 날 일어난 일
아침 8시. 현장학습 버스는 모두 왔어야 했다. 그런데, 버스는 몇 대 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이미 운동장에 나와 있었다. 날도 제법 쌀쌀하기에 교실로 들어가 있으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이미 흥분해 버린 아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들어오는 버스와 부딪히지 않도록 바깥으로 잘 통제하는 수 밖에. 시끄러운 호각소리가 운동장에 울려퍼지고 아이들이 운동장 외곽쪽으로 빠져나가고. 그 사이에 몇 대의 버스들이 더 왔다.
아침 8시 30분. 떠났어야 할 아이들이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운동장 주변에서 기다리고 있다. 먼저 도착한 버스 운전사들도 초조하긴 마찬가지. 행정실 직원도 교감인 나도 그리고 학년의 선생님도 째려보지만 도착하지 않은 버스에서는 답이 없다. 먼저 출발해야 하나? 남겨진 반은 어쩌지? 교문 밖으로는 배웅하려고 나온 학부모님의 모습이 보이는데 몇 반만 먼저 가는게 어떻게 비추일지.
다양한 해결(?)방법이 나오고 나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그래 교장님이 안계신 지금, 나는 이 학교의 대표이다. 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는 것이 그 결정으로 인해 무한한 책임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이럴거면 아예 늦게 오게 할걸. 이럴거면 이 버스 회사는 쓰지 말자고 할껄. 통근버스는 안된다고 조항을 붙일 걸. 위약금을 쎄게 물려야 할 텐데. 온갖 종류의 잡념이 떠오르지만 결정을 해야 한다. 욕은 그냥 내가 먹어야지 어쩌겠나.
"먼저 출발하시지요."
배정된 차량 순서대로 학급 인원들이 타고 불행하게도 늦게 온 차량의 학급은 남을 수 밖에 없었다. 떠나는 버스들에 손을 흔들어 주는게 나의 일이었는데, 남겨진 아이들을 보니 미안하다. 게다가 남겨진 담임은 또 무슨 죄라. 그냥 순번이 틀렸을 뿐인데. 아이들의 원망을 어찌 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 모든 게 과연 내가 잘못하고 담임이 잘못해서 일어난 일일까?
"교감선생님, 억울해요. 우리 걸어가면 안되요?"
- 걸어가면 오늘 안에나 도착할 수나 있을까?
"교감선생님, 우리 엄마 지금 집에 있어요. 차 태워달라고 하면 안될까요?"
- 혹시 어머님이 버스를 가지고 계시니? 그렇다면 정말 좋겠는데.
"교감선생님, 이럴 거면 도대체 왜 그렇게 일찍 오라고 한거에요?"
- 이럴 줄 몰랐지.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남겨진 아이들과 함께 같이 있다보니 원망들이 나를 향한다. 그래, 화가 나는 건 당연하고 울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 얼마나 기다렸던 현장학습인데. 못갈수도 있다는 불안감도 있을테고, 피해를 봤다는 생각에 억울할 수도 있을거다. 왜 하필이면 우리 반인지 따져도, 그냥 운이 나빴다고 이야기를 해 줄 수 밖에. 그게 사실이지만 아이들을 납득시키기에는 쉽지가 않지.
겨우 버스가 오고 우여곡절 끝에 아이들을 태우고 떠나보내면서 아이들에게 위약금을 받으면 꼭 너희 반을 위한 선물이라도 받아 오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하지만 계약 관련은 내 소관이 아니라 행정실 소관이니 나는 그냥 큰소리만 떵떵 친 셈이다. 뭐 버스회사랑 따지고 싸우는 일은 결국 행정실에서 하겠지만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그렇게 쉽게 잘못을 인정할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 버스 기사들이 부족하여 버스 잡기도 어렵다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이런 일들이 꽤나 있었던 것 같다. 특히나 단풍철 청소년 단체 행사를 갈 때면 정말로 버스 구하기가 힘들었었다. 예상한 버스보다 너무 노후화된 버스가 오기도 했고, 심지어는 안 오는 경우도 있었다. 버스가 고장나서 못 온다는 데 무슨 말이 필요한가? 버스 회사에 항의를 해 봤자 결국 시간적으로 손해를 봐야 하는 건 우리였으니. (가장 화가 났던 건 버스가 없다고 45인승 대신 25인승 콤비가 왔을 때.. 였다.. 그 때 위약금을 받았나 모르겠네). 게다가 기사님들 눈치는 왜 이리 봐야 했는지. 지금은 새떼 이동이 금지되었지만, 예전에는 비일비재하여 간혹 급정거, 무리한 끼어들기는 흔한 일이었고, 겁이 난 나로서는 아이들의 벨트 확인을 철처히 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주 많이 좋아지긴 했다. 이것도 역시나 라떼일 뿐인가?
하루 종일 조마조마 하다, 무사히 잘 도착한 아이들을 보니 조금 마음을 풀 수 있었다. 그래도 재미있었다니 감사할 따름이지만, 위약금은 꼭 받아서 그 반 아이들에게 뭐라도 혜택을 줘야 겠다. 교감 월급이라도 많으면 아이스크림이라도 돌리련만. (아, 학교 안에서 음식물 사 주는 거 코로나에서는 안되는 거였던가? 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내년에는 자주 가요!"
아이들의 말에 조금 위로가 되었다. 내년에는 코로나 같은 녀석이 없길 나도 정말로 바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