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공약의 수준

어떤 경험이든 소중한 거겠지?

by 투덜쌤

3월이 되면 학교마다 선거가 소란스럽다. 학급 어린이회부터 전교 어린이회까지.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축제다. 누구나 나갈 수 있는 학급회장이다 보니 새학기가 되기도 전에 미리 준비하고 생각한다. 연설을 미리 준비한 친구들도 있고 다양한 노하우를 이 곳 저 곳에 얻게 된다.


"이 실내화가 헤지도록 닳고 뛰는 회장이 되겠습니다"

"(종이를 반을 접고 반을 또 접은 후) 저는 이처럼 반의 반장이 되겠습니다"


아무리 봐도 초등학생들이 스스로 저런 문구를 깨닫진 않았을터. 결국엔 부모들의 노하우가 들어가 있겠지만, 그 또한 귀엽다. 해본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있을리가 없지. 그렇게 이해하면 되는데.. 어른들 입장에선 그리고 교사 입장에서는 좀 더 엄격해 지는게 사실이다.


실은 무슨 연설을 하던 말던, 공주 옷을 입던 어벤져스 옷을 입던 딱히 상관은 없겠지만, 과열되면 늘 혼란이 온다. 이제 벽보를 그려오는 아이는 거의 없는 듯. 캘리그래피는 애교이고, 이젠 디지털 인화를 해 오는 듯 하다. 매끄러운 종이에 포샵된 사진. 그것도 경험이라면 뭐 경험이겠지만 과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순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정해진 시간에 벽보를 만들라고 하면... 갑자기 회장의 능력에 그림실력이 추가될 뿐이다. 그건 오히려 더 문제가 아닌가?


결국 벽보는 어느 정도 허용하지만 의상은 제한했다. 물론 연설의 시간도 제한했고, 소품도 제한하고. 그래야 공평하다나? 그렇다면 말솜씨 좋은 아이가 뽑히는 건데.. 토론을 하는게 아니라면 그냥 일방적인 발표솜씨 뽐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다들 회의감을 이야기하지.


그런데 작년인가 아이들 공약 이행을 조사하는 공문이 내려왔더라. 그 공약이라는 게 중요한 때가 온거다. 100만원을 학생자치회 예산으로 편성하지만, 아이들 회의할 때 주는 간식비 정도의 예산일 뿐, 자신들의 공약을 실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예산. 반마다 축구공, 피구공, 배구공을 준다고 하는데.. 줄 수는 있으나 관리는 누가하는가? 운동장은 한정되어 있는데 (게다가 방과후 축구부라도 있으면) 공을 준다고 한들 쓸 수는 있는가? 교실마다 정수기를 설치한다고 하는데, 아리수를 쓰면 정수기를 쓸 수 없는 형편을 아이들이 이해는 하는가?


그러다 보니 올해 공약을 보면서.. 한숨이 많이 나왔다. 매년 나오는 공약들도 뻔했다.


공유 우산함을 만들겠습니다.

피구 대회, 발야구 대회를 하겠습니다.

반마다 정수기를 설치하겠습니다.

급식 메뉴를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나오게 하겠습니다.

아침 마다 노래 방송을 틀어주겠습니다.

전교 마니또 제도를 실시하겠다

운동장을 천연잔디구장으로 만들겠습니다.

흰 우유 대신 초코우유, 딸기우유로 바꾸겠습니다.


예산이 들어가고, 학교교육과정과 관련있는 공약들은 후에 협의가 필요하다는 안내는 했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솔깃하긴 하다. 그래놓고 되면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 안되면 부모에게, 부모는 다시 학교에게. 음. 이러다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가겠네.


뭐 폐해도 있고, 어설픈 과정도 있지만 그래도 난 이런 선거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저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아이들이 크는 것 아닐까? 다만 교사들은 매년 똑같은 문제로 고민을 해야 하니 번거롭겠다는 생각은 든다.


문제는 이걸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선.

그냥 아이들의 일이거니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면 될 것 같은데, 어찌보면 자기 아이들의 일이라 학교에 민원(?)을 내는 경우도 있기도 하다. (매우 곤란하다. 그걸 학교에서 모두 해 줘야 하는건 아닌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쩌란 말인가..) 학기 단위로 끝나는 임기때문에 노력만 하다 좌초(?)되는 경우도 많은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성과만을 바라시기도 한다. 논의의 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참 긍정적일 것 같은데 말이지.


본인들이 할 수 있는 범위를 사전에 고지하지 않은 잘못도 있으리라. 후보자 교육이라도 해서, 어떤 공약이 좋은지 토론을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학년말, 학기초에 시작되는 일정때문에 따로 이런 시간을 갖기가 참 어렵다. 필요하다면, 전교회장의 임기를 1년으로 했으면 좋겠지만,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준다는 측면에서는 월별회장도 도입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 또한 장단점이 있어 보인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다보면, 초등에서 회장이 필요하냐? 너무 거창한 걸 원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도 받는다. 그래도, 아이들 스스로 무언가 계획하고 참여하고 실행하는 경험만큼 중요한게 또 어디있을까?


어설픈 선거이고 공약이겠지만, 어른들이 만들어 주지 않고 스스로 계획하도록, 그리고 그 결과마저 온전히 자기 몫으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선생님, 이번에 저 회장 선거에 나왔어요~ 어제 잠도 못잤어요. 너무 너무 떨려요~


아이들의 설레여 하는 모습이 어찌되었던 이 행사의 진정한 의미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부장과 학급담임 발표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