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으로 살아가려면 함께 있어야 한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로랑 베그

by 투덜쌤

41조 연수를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여름방학의 목표는 책읽기, 연수듣기, 그리고 근무. 방학때라서 근무하면서 책읽기도 좋다. 내년부터 2022 개정교육과정이 시작되니 그것도 살펴봐야 할 것도 같고. 아무튼 방학이라는 건 교원의 특권. 다만, 교감이기에 그 특권이 제한되는 건 좀 아쉽다. 뭐,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교사는 아니기에 감내해야 하는걸까?


가벼운 마음으로 선택한 책인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제목부터 유쾌하다. 도덕적 인간이 나쁜 사회를 만드는 건 기정사실이고, 왜 그런지를 탐구하고 있다. 원래 책 제목은 선과 악의 심리학 정도로 읽혀진다. 영어로는 The Psychology of Good and Evil. 저자는 프랑스 사람이다. 그래서 프랑스판 표지를 찾아봤다.


9782738184795.jpg 불어 오랜만에 본다. and의 뜻인 et만 기억나네.


첫 장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아진다. 요약하고 싶은 욕구가 벅차오른다. 이런 책들 교과서 같아서 참 좋다. 한문단 한문단 읽으면서 이야기 나누면 꽤나 긴 토론거리가 될 듯 하다. 반대로 쉽게 읽혀지지 않으니 오랫동안 읽게 되는게 단점이다. 방학동안 겨우 이 책 하나 읽게 생겼다. 빌린 책들도 많은데. 이런.


아무튼 첫 장부터 시작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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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의식은 나를 위해 기억을 조작하고 평균 이상일 거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자의식이 옅어지는 집단 속에서나 가면 뒤에서는 굳이 도덕적인 척 할 필요가 없으니 본성(?)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결국 감시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넘어가려 하는데.. 그래서 2장이 가로등이 지켜보는 사회인 것 같다.


아무래도 과학적인 근거로 이야기하다 보니 통계적으로 좀 더 확률이 높은 쪽으로 이야기한다. 그게 조금은 불편할수도 있고, 나랑 맞지 않는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조차 자의식의 과잉이라고 저자는 여기는 듯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평균 이상일 거라는 착각은 여러 모로 수긍이 간다.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실수를 지적하고, 잘못을 나무라고.

그렇지만 자기가 한 것은 실수고, 기회를 줘야 하는 거고, 나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항변하고.

잘되면 내 덕, 못되면 니 탓.


일종의 내로남불도 큰 의미에서 보면 자아가 기억을 조작하는 한 가지 예가 아닐까? 원래 인간은 그런 동물인 거지. 자기를 비하하면서 매번 반성만 한다면 금방 멸종했을 지도 모른다. 결국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인간으로서 생존 본능에 가깝지 않을지.


다만 우리는 사회적 구성원이기에 계속 그렇게 내로남불로 살 수는 없다.

거울을 보면서 나를 좀 더 객관하여 자의식 과잉이 되지 않도록 조절해야 하는게 필요한게 아닐지.




모든 장들을 차례로 요약하려 했는데 그 욕심을 버리려 한다. 책은 너무나 재미있고, 다양한 사회심리학적인 실험들을 잘 제시했다. 다만 번역된 문장이 조금 어려웠다고나 할까? 여러번 읽어야 맥락이 파악되거나, 전문적인 지식 없이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어 검색엔진을 뒤적거려야 했다. 이런 책은 여러 번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 하는데.. 괜히 도서관에서 빌렸다. 중고책이라도 사서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하지만 안볼게 뻔하긴 한데.


책 뒤편 수 많은 주석들을 보면서 작가가 얼마나 학문에 진심인지를 느낀다. 이런 책들은 인용할 때 근거를 많이 제시하더라. 어쨌든 자신의 논리에 대한 근거를 튼튼히 하려는 노력이라 인정한다. 오히려 너무 대충 각주로 때우려는 책들이 허술해 보일 뿐이다.


마지막 장에 있는 마지막 챕터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아는만큼 도덕적으로 살 수 있다.


도덕이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정의되는 것인것 만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아가는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이 되는거라고 나름 정리했다. 혼자 살아간다면 규범들은 필요없겠지. 로빈슨 크루소가 대낮에 아무 것도 입고 다니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겠지. 일탈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제어하고 스스로 조심하는 역할은 결국 사회가 해야 한다. 공동체라는 곳에서 고립되지 않고 살아가야지만 나를 살피고 남을 돌보는 그런 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최근 일어나는 칼부림 같은 그런 일들도 덜 일어나지 않을지.


챗GPT, 인공지능, 원격, 화상, 자율주행, 익명의 인터넷. 기술의 발전이라는 게 철저하게 개별 맞춤형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도덕규범이 강조되려면 결국 사회성을 복원해야 한다는 게 좀 아이러니 하다. 공동체가 주는 이점이 그로 인한 피해보다는 더 낫다는 결론일까? 적절한 경계는 도대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할까? 이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볼 책을 만났으면 좋겠다.


어쨌든 이번 방학은 이 책 하나가 아주 보람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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