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대신할 장난감은 꿈꾸지 마라

메간 (2023) - 그럴수도 없고 그래서는 안되는

by 투덜쌤

나는 공포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를 들면서 그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아내는 '다 짜고 한 건데 뭐가 무서워, 저 피도 진짜가 아니고' 라는 식이고, 나는 악귀를 보다가 카메라가 김태리 뒤만 비춰도 일단 눈을 질끈 감는 편이다. 소름끼친다는 표현을 늘 피부가 경험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짜릿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공포영화를 보는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심장 쫄려서 못보겠다는 쪽으로 기운다. (중년에 심장은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불을 다 켜고, 핸드폰으로 게임도 좀 하면서, 무얼 먹기도 하고, 딸내미와 이야기를 하면서 이 영화를 보았다. 공포영화라는데 마냥 무섭기만 한 건 아니라서 안심을 했다. 게다가 관람등급이 15가 아닌가? 내 뒤에 든든한 성인이 된 딸이 지켜주는데 뭔 걱정일까! 그래서 선택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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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간(M3 GAN)은 'Model 3 Generative ANdroid'의 약자라 한다. 왠지 트랜스포머에 나온 메간 폭스를 닮은 듯 하다. 뭐 나는 주변 사람이 다 아는 얼굴인식장애가 있다만. 통통한 바비인형? 혹은 실리콘 바비인형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듯 하다. 120cm에 인공지능이 딸린 친구같은 로봇. 영화를 보면 친구 그 이상이다. 질리지 않게 계속 생활습관을 지적하고, 쫑알대는 어떤 말도 다 들어주고, 심지어는 트라우마까지 치료해 준다. 감동이다. 어쩌면 AI에서 바라는 점이 이게 아니었을까 생각도 해 본다.


영화 초반은 AI의 장점을 부각하고, 후반에는 단점을 부각한다. 스스로 익히는 딥러닝. 최소한의 제어장치도 먹통이 되는 시스템불량. 통제되지 않는 AI가 인간보다 더 훌륭한 지능과 체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악행들을 저지른다. 그나마 다행인건 15세 관람가라서 필요없는 끔찍한 부분은 없다는 것. 그러다보니 예전 공포영화 보는 느낌이랄까? 그게 오히려 덜 무섭게 볼 수 있는 장치인듯 싶어 좋았다. 전미 흥행 1위를 했었다니 사람들도 좋아한듯.


작품 설명을 대충 살펴보니 애나벨과 터미네이터의 결합이라는 말이 있더라. 작가가 제임스 완이라서 그런가 보다. 난 사탄의 인형 처키가 생각나던데. 그래도 그 녀석은 크기가 작기라도 했지, 120cm면 좀 끔찍할 거 같다. 처키는 그래도 사람의 영혼이 들어간거라 협상(?)의 여지가 있어 보였는데, 이 녀석은 프로그램이라 논리를 파고들수가 없다. 이제 사람의 머리로는 감당이 안되는 그런 녀석들이 나오는 걸까? 통제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그 쥬라기 공원에서도 통제가 안되는 새로운 종이 탄생했는데, 프로그램의 버그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가 참 공포군.


직업상 어쩔 수 없이 보게 된 몇가지 장면


부모가 죽고 난 이후 젬마가 언니의 딸인 케이디의 양육을 맡게 되는데,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매 사이가 돈독하지 않았는데 왜 그녀는 아이를 키울까? 아이를 키우면 무슨 혜택이라도 있을까? 미국에서 육아하는 게 만만치 않다고 알고 있는데 프로그래머라는 고소득자라서 가능한 건지 이런 설명은 없었다. 그냥 영화적인 설정으로 이해한다.


갑작스럽게 부모를 여윈 케이디를 위해 심리치료사가 방문했다. 그리고 여동생인 보호자가 그녀를 케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여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한다고 한다.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르겠으나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환경, 양육태도를 확인하는 방식은 마음에 들었다. 부모로서 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모든 것을 다 적을 수는 없겠지만 기초적인 내용들은 문서화한 것 같더라. 핏줄만 이어졌다고 다 부모노릇을 할 수 있는게 아니듯이, 부모 자격 하한선이라도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게 아닐지.


장난감은 장난감일 뿐. 결코 보호자를 대체할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이 남는 말이다. 메간이라는 아주 비싼 장난감을 설명하면서 '메간이 아이랑 놀아줄테니 어른들은 각자의 일을 보세요'라는 설명이 나온다. 대부분의 장난감 광고들이 다 그런 듯 하다. 지금 나오는 광고에도 TV를 보면서 아이들이 영어도 배우고 정해진 시간만 게임을 한다고 계속 홍보하지 않는가? 태블릿으로 공부를 하고 화상으로 강의를 듣고. 그 시간에 부모는 다른 일을 하면 된다고 현혹하는데, 그렇게 자란 아이들에게 과연 부모에 대한 애착은 얼마큼 있을지. 어찌보면 교권이 휘둘리는 것도 부모가 휘둘리는 것의 연장선이지 않을지.


부모의 역할, 사람과의 관계, 사회성 이런 것들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한다. 세상의 편리가 결국 개인화로 가는 과정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관계의 단절로 가서는 안된다. 편리한 스마트폰이 부모와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요원하게 만들고, 오히려 자기과시적인 SNS의 집착으로 귀결된다면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한 듯.


도구는 그냥 도구일 뿐, 정말로 필요한 건 결국 부모라는 사람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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