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닭갈비 - 탄광광부의 애환이 서려있는

태백이 유명, 난 사북, 국물닭갈비도 비슷해 보인다

by 투덜쌤

최근 닭갈비집들이 주변에 꽤 보이기 시작한다.

소고기 보다 싼 돼지고기, 그 보다 더 싼 닭고기. 그 순서가 아닌가 싶다. 어느 것이 더 맛있지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결국에는 치솟는 물가의 탓이 없다고는 못할 듯 하다. 어찌되었던 대중의 시선에서는 가장 비싼게 맛있는 거겠지? 한우 꽃등심을 먹어본지 좀 오래되긴 했네.


개인적으로 닭을 좋아한다.

튀겨 먹는게 가장 맛나겠지만 닭갈비를 알면서부터 자주 갔던 것 같다. 닭갈비의 성지인 춘천에서 시작한 열풍이 최근에는 숯불 닭갈비 유행으로 전환되는 듯 싶다. 근처에 하나 둘씩 숯불 닭갈비 체인점들이 생겨나는데 별미다 싶어 즐겨먹게 된다. 가격이 아주 싸지는 않더라만.


그러다가 최근에 강원도 여행 갔다가 새로운 메뉴를 만났다. 물닭갈비. 태백지역에서 시작했다는데 유래를 들어보면 이런 애환의 음식도 없다. 탄광 노동자들이 고기를 먹기 위해 그래도 싼 닭을 선택했고, 목구멍에 남아 있는 석탄가루를 씻기기 위해 칼칼한 국물을 곁들였던 음식. 그리고 푸짐해 보이기 위해 국물 요리로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



실은 태백에서 먹고 싶었는데 주말 오후라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주차할 곳도 없고 빙빙 돌다가 결국 사북지역까지 가게 되었다. 사진을 비교해 보고 후기들을 읽어보니 닭갈비가 물에 빠졌다는 컨셉은 비슷한 듯. 솥뚜껑같은 냄비에 육수에 양념에 닭갈비를 넣고 이것저것 야채들을 잔뜩 넣는다. 내가 먹은 곳에서는 배추가 많이 들어갔다. 감자도 들어갔고. 다른 곳에서는 미나리를 넣는 곳도 있고, 깻잎을 넣기도 하고, 원래 가려던 곳은 냉이를 넣어준다고 하던데 그 냉이는 계절한정이라고 하더라. 아무튼 계절의 신선한 채소들로 푸짐함을 연출해야 하겠지.


야채 육수가 꽤나 시원하다. 칼칼함도 넘치고. 내겐 산초? 생강? 강황인지 하는 향신료 맛이 나던데, 닭의 비린내를 제거할 방법이었을까? 달짝지근함이 없으니 아이들이 덜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잘 먹더라. 육수를 만약 사골육수를 넣었으면 좀 더 감칠맛이 났을까? 어쩌면 닭볶음탕 맛과 가까워졌을 수도. 아무튼 이 맛은 확실히 기존에 먹지 못했던 맛. 고랭지 배추는 아삭하니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매운 샤브샤브에서 야채를 넣었다 먹는 느낌이랄까? 다만 고기는 좀 아쉽긴 하더라. 풍족함은 다른 탄수화물로 채울 수 밖에.


볶음밥은 역시나 배신하지 않는다. 들기름 냄새가 가득하고 김가루도 있고, 야채에 국물 맛까지. 어떻게 만들어야 이 맛은 나를 실망시킬까? 기름이 들어가서 볶는 건 왠만해서 맛없기 힘든 듯. 수분이 날라간 볶음밥은 고슬고슬함이 식감을 더한다. 누룽지처럼 살짝 늘러붙으면 금상첨화. 타기 직전까지 만드는 게 노하우가 될 듯. 박박 긁다보니 끝이 보인다.


가격은 1인분에 만원 정도. 들어간 재료에 비해선 다소 아쉽다. 그래서 우동 사리는 꼭 시켜야 하고 남은 국물로 볶음밥을 꼭 먹어야 한다. 그렇다면 거의 12000원 수준이다. 관광지에서 그 정도 가격이면 적당하다 못해 조금 싸지 않나 싶다. 고기배라기보다는 밥배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푸짐히 먹었다. 칼칼한 국물은 소주나 막걸리에 딱일 듯. 탄광에 들어갔다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지역에서 나는 먹거리와 그 속에 있는 이야기가 더해져야 음식은 본연의 맛을 느끼는 듯.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졌다면 그냥 심심한 맛이었을지도 몰랐을텐데, 칼칼함과 인생의 고단함을 바꿨다니 꽤나 인상깊은 음식이 되었다. 나이를 먹으니 조급함에서 좀 벗어나는 듯. 이런 맛도 즐길 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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