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되는 민원과 허용될 수 없는 민원

악성민원과 진상민원, 그리고 건강한 민원의 차이

by 투덜쌤

서울 서이초 사건에 이어서, 의정부 ㅎㅇ초 사건까지. 공무원들을 향한 악성민원은 결국 학교도 피해갈 수 없는 모양이다. 담임일 때는 좀 적게 받았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남자라서 그렇다고 한다만) 교무실에 있을 때에는 그것보다는 많이 받았고, 교감일 때는 갑자기 그 양이 점프해 버렸다.


교감이 아닐때에는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서 그런지 열은 받지만 내용을 전달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교감이다 보니 더 이상 넘길 곳이 없더라. 교장이라고 모든 일을 다 알고,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담임으로부터 건네오는 민원까지 생각하면 정말 많긴 많다. 우리 학교는 40학급이 넘는 큰 학교다. 왜 이런 곳에 발령이 났는지. 교감도 좀 작은 학교가 좋긴 하다만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래도 민원 중에서는 기분 좋은 민원이 가끔 있기도 하다. 감사하다는 민원(?)도 받아봤다. 처음에는 따지려고 이야기를 하다가도 함께 이야기하다보면 학교가 할 수 있는 한계와 교사의 지도 권한에 대해 설명했을 때 이해하시는 분은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은 떨떠름하게 끊으시거나 더 위를 찾으시거나. 그것도 권한이라고 생각하시는데, 바꿔줘야 할 혹은 통화를 해야 할 의무는 없는 거다.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해 주는 민원은 건강한 편.


저희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가 반드시 바뀔거라고 말씀은 못 드려요. 이야기를 전달해 드리고 담임선생님도 노력하겠지만, 가정에서도 해 줘야 할 것이 있고 학생도 노력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잘 되었을 때 좋은 결과가 있겠지요.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악성, 진상 민원인지 아닌지는 이 부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서 갈린다. 자신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민원들은 학교나 담임이 하는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학부모가 해야 할 '의무'를 이해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성향이나 자질도 간과하기 일쑤다. 무조건적인 학교나 담임의 노력으로 아이들이 바뀌기를 바란다. 그게 가능했다면 왜 가정에서는 못했을까? 거의 1대 1 혹은 많아야 1대 3의 교육환경에서 고치는 것이 훨씬 좋지 1대 20 또는 30명인 학급에서 담임에게 그것을 요구하는 건 무리가 아닐지.


담임 선생님의 지도에 관한 민원도 참 많이 받는다. 물론 좀 더 따스하게 가르쳤으면, 혹은 좀 더 엄격하게 가르쳤으면 하는 바람은 누구나 있다. 일기 지도를 해 달라, 혹은 하지 말아달라, 늦게 가도 혼내지 말아 달라, 숙제는 조금만 내 줘라, 급식 지도 해 달라, 혹은 하지 말라. 문제는 그것이 교권을 침해한다는 생각을 못한다는 거다. 그냥 건의한다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아까도 이야기를 했듯이 건의는 꼭 들어줘야 하는 게 아니다. 그걸 이해하지 못하니 결국 '두고 보겠습니다'라는 망언에 까지 이른다.


교사들은 모두 아이들에게 헌신해야 해


학부모들이 이 말을 하는 순간, 교사일 때 내 가슴속에 새겼던 말은 족쇄가 되어 버렸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그렇게 힘들었던 순간을 보람된 순간으로 바꿔 나가곤 했는데, 이제 그러한 말들이 너무나 버겨워 진다. 예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교사에 대한 신뢰와 존중이 컸었던 그 때에는 스스로 헌신했었는데, 그 헌신을 강요받고 있으니 결국 직업인으로서의 교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 아니면 힘들어지니깐. 빠져나갈 돌파구를 찾을 수 없으니.


학교는 직장이고 교사도 그 안에 있는 구성원일 뿐이다. 내 몸이 아파도 병가를 내는 것에 걱정을 해야 할까? 누구나 아프면 쉴 권리가 있는데 말이다. 다른 사람이 대신 들어오는 게 왜 문제가 될까? 그 분도 담임을 할 수 있는, 초등 교사로서 가르칠 수 있는 자격증이 있는 분인데 말이다. 무슨 일로 병가를 내는지, 왜 이렇게 오래 안 나오는지를 꼬치꼬치 캐묻는 학부모들은 기본적으로 그것이 교사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생각보다 그런 분들이 많다. 여전히 전화번호 물으시는 분도 많고. 오후 늦게 중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문자로도 충분한 일이 대부분. 다음 날 안 나오면 담임이 알아서 전화하겠지. 그걸 기다리지 못한다. 의사가 아닌 우리가 방과 후에 학생들의 긴급한 요구를 들어야 할 일이 도대체 무엇일까? 다쳤다고? 아프다고? 교사는 의사가 아닌데.


학교에서 일어난 일을 아이들에게 듣고 나서 그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담임에게 전화하는 경우가 많더라. 알면 순간의 궁금함이 해결되겠지만 교사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보고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봐야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 다시 말하자면 25명이다. 그 모든 것을 다 알고 전화만 하면 바로 이야기를 해 줄거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닐지. 다음 날 쪽지로 이야기를 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후에 상담할 수 있다. 순간을 다투는 시급한 일은 아니지 않는가? 오후에 전화가 되지 않는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담임의 자격을 운운하는 건 너무 과하지 않을까? 결국 그런 민원들이 교사를 직장인의 길로 가게 한다. 근무시간 이후의 상사의 카톡도 갑질이고 문제라고 하는 세상인데 말이지.


교사나 학부모나 결국은 아이를 위해 같이 가야할 동반자이다. 25명의 학생들을 학급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가르치는 교사와 가정에서 내 아이만을 보는 학부모가 똑같은 일을 할 수는 없다. 가정에서의 교육관을 학교에서의 교육관으로 주장할 수 없다. 의사에게 가정에서 하는 민간치료 방법으로 쓰면 안되냐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지 않는가? 어찌되었던 초등교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한 사람 한 사람을 양육하는 건 학부모가 더 잘 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학급에 있는 학생들을 아우르면서 가르치는 건 교사가 더 낫지 않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존중하면서 건의를 하고 인정을 하는 민원을 많이 받아 보았으면 좋겠다. 그 노력으로 한 순간에 한꺼번에 변화되진 않겠지만 노력할 것은 노력하면서 함께 동반하는 학교였으면 좋겠다. 담임선생님들도 사명감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족이지만, 교감에게 전화할 때도 건의와 명령은 구분해 주었으면 좋겠다. 가끔 가다보면 민원을 듣는 건지 아니면 학교 일에 대해 코칭을 듣는 건지. 나도 교감 자리를 그냥 온 건 아닐텐데 앞뒤 안가리고 그냥 이렇게 하면 된다고 나를 가르치려 하면 곤란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건의는 건의일 뿐. 충분히 검토해서 반영할 수도 있겠지만 안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내 상전인 것처럼 이야기를 한다면 (대놓고 반항은 못하겠지만) 듣고는 있지만 한귀로는 흘려버리게 된다.


뭐, 교육청에 가고 싶으시면 가시던지.
그걸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계시는 몇몇 분들!
이 글 혹시 보신다면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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