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려치고 싶다가도 다시 教監하고

教監의 필수는 결국 사람들과의 交感인가?

by 투덜쌤

직책에 대한 경력이 더해지면서 처음엔 내 처지에 대한 불만만 많았다. 왜 내가 저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선생님들이 해야할 일이 아닌지. 학부모는 왜 이런 일로 전화를 하는지. 교실에서 이상한 아이들이 정말로 많구나. 뭐 이런 저런 불만들. 그게 폭발하고 나니까 왜 나는 교사로 다시 내려갈 수가 없는지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수당도 적고, 보람도 없고. 힘은 들지만 이야기할 사람은 없고. 지탄의 대상이 되는 교감일 뿐인데 누구도 내 처지를 알아 주지 않고. 뭐 그런 불만들.


그러다가 9.4.를 만났고 그 괴로움은 더 커져갔다. 선생님들은 좀 더 노골적으로 관리자들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는데, 실은 학부모도, 학생도 주문 사항이 비슷하다는 것. 교감은 교사의 편이어야만 하는가? 학생, 학부모 편일수는 없는가에 대한 현실적인 질문들이 계속되었다. 옳다고 믿는 것에 대한 혼란함. 누구보다도 교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학생, 학부모는 여전히 모르겠고.


우울했다. 뭐 어쩌고 저쩌고 지지고 볶아도 우리 반만 잘 케어하면 되는 교사였는데. 굳이 내가 알고 싶지 않은 일들에 휘말리고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이 상황이 참 싫었다. 그러면 나는 의원면직 밖에는 없는데. 키워야 할 아이들과 대출금은 어찌할꼬. 현실적인 고민 앞에서는 늘 작아진다. 어떻게 해야 하나.


校監이 아니라 交感이어야

내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물론 나는 관리자지만 그렇다고 학교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우두머리는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굉장히 제한되어 있다. 학교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교장선생님. 그리고 나는 그 권한을 위임받은 만큼만 행사한다. 행정적인 처리는 일종의 서비스라고 생각했다. 교육청과 선생님 사이를 조율하는 서비스. 일종의 동사무소의 역할? 난 대단한 사람은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하더라. 그리고 나서 조금은 살 것 같았다.


내 학급이 내 학교로 커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학교는 내가 품기에는 너무 컸던 것 같다. 실은 교무실도 내 품에 품지 못해 늘 허덕이고 있다. 사람을 품에 안는다는 것, 그것도 다 큰 어른을 안는다는 건 아주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더라. 교실에서는 아이들이었으니 좀 더 수월했던 거지, 여전히 학부모는 어려웠고, 안으려고 노력해도 안되는 학생들도 있었다는 걸 늘 잊는다. 좋은 것만 기억하려는 못된 습관일까?


모든 것을 규정대로 진행하려는 내 마음을 조금은 버리기로 했다. 엄격한 것은 필요하지만 내 재량이라는 건 (물론 그 분들은 내가 재량을 부리는지도 모르시겠지만) 필요하다 생각했다. 남들에게 피드백 받으면서 내가 잘 한다는 것을 느끼며 뿌듯해 하며 살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칭찬과 보상이 없어도 그냥 나 자신을 토닥이기로 했다. 그랬더니 요즘은 조금 살 것 같다.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것


공동체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서 이건 어쩔 수 없는 법칙인 듯 싶다.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날이 덜 서고, 서로의 모난 부분을 맞출 수 있더라. 나도 교감이 처음인지라 그게 꽤나 오래걸렸고 (그래도 난 인간관계에 대해서는 자신있던 사람이었는데..) 아직도 연습하는 중이다.


꼭 내가 칭찬받지 않아도 되고,

남들이 나를 미워해도 내 위치를 미워하는 거라 믿고,

누군가 해야 할 책임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고 고맙다고 이야기해 주고,

내 의견을 말하기 보다는 그 사람 의견을 먼저 들어주는 것.


아직도 바꿔야 할 일들이 많은데 위의 것만 실천해도 조금은 마음이 편하더라.

결국 순리대로, 흐름대로 흘러가야 하는게 맞는 것 같다. 옳지 않더라도 말이지. 이게 비겁하다고 느꼈는데, 요즘은 조금 비겁하게 살아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 그렇게라도 살아야지. 내 삶에 대해서는 비겁하지 않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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