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한 시대, 현실과 이상 사이
1.
이 이야기는 정치적일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냐에 따라 이쪽이 되기도 하고 저쪽이 되기도 한다. 중립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더라. 마음대로 읽어라. 최대한 조심스럽게 쓰긴 썼다. 난 어느 입장을 생각한 건 아니다. 그냥 혼란스러움에 대한 의견일 뿐이다.
아이들에게 현실을 가르쳐야 하나 이상을 가르쳐야 하나?
2.
'왜 공부를 해야 할까'라는 대답에 늘 '많이 경험하고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상식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서라고 대답하곤 했다. 하지만 결국은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갖고 돈을 많이 버는 게 궁극의 목표가 아닐까? 인성이 바른 어린이로 키워지길 바라지만 그건 곁가지 일뿐이다. 초등학교부터 학원을 다니고, 5,6학년이면 중학교 과정에 들어가며 중학교가 마치기 전에 고등학교 과정을 띈다. 우리는 그러면서 '현실이 그래. 어쩔 수 없어'를 외친다. 솔직해 지자. 인성이 바른 어린이는 그냥 말 잘듣는 어린이로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3.
사회 시간에 '님비현상'에 관한 주제로 토론을 하자면, 아이들에게 공공의 이익, 다같이 잘 살 수 있는 방안으로의 토론과 협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소각장 반대, 임대주택 반대가 서명지가 놓여져 있다. 아이들에게는 최선의 방법을 찾자면서 현실은 일단 내 주장이 먼저다.
4.
이러니 짝을 바꿀 때마다 아이들은 싫은 짝이 될 때 싫은 티를 팍팍 낸다. 그러면 안된다고 너도 누군가에게 싫은 사람일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해도 마음이 시키는 것을 마냥 타박할 수 없다. 거기에 학부모라도 함께 가세할 때에는 걷잡을 수 없다. 다행히 담임과 사이가 좋으면 '세상이라는 곳이 꼭 원하는 사람들과 살 수는 없잖아요'라는 이야기로 잘 설득해 본다. 설득되면 다행이고, 무지막지한 학부모라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다.
5.
혐오와 반대, 배척과 조롱이 너무 늘었다.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좋은 것만 하라고 하지만, 능력이라는 것이 늘 필요하고, 그 능력대로 나의 역할이 늘 배정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운이 필요하다. 나는 아이들에게 그 '운'에 대해 이해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전래동화 처럼 그래도 해피엔딩이 될거야 라고 이야기해 줘야 하는지 헷갈리기만 하다.
6.
더 가진 사람이 더 갖고자 하는 건 당연한 심리지만 그것이 과열될 때에는 통제도 필요하다. 내가 받는 불이익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면, 결국 먹이사슬 끝에 있는 사람은 죽어나갈 수 밖에 없다. 능력이 없고 성격도 별로인 우리 반 아이랑은 짝은 없어야 하고, 그렇게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 교실도 정글이 된다. 누군가 이야기했지? 야만사회라고. 그런데 교실만 예외인 것도 웃기다.
7.
그냥 순수하게 아이들의 눈에서 해법을 내자면 늘 답은 나온다. 결국 자기가 가진 사람이 좀 더 양보하고, 덜 가진 사람은 고마워 하고, 그렇게 서로의 파이를 키우며 함께 협력하는 게 교실에서 바라는 건데, 이것을 사회랑 대입해 보자면 많이 헷갈린다. 양보하면 지는 거고, 수준에 맞는 사람끼리 살아야 하고, 과시하는 것도 필요하며, 결국은 부모님의 재산이 모든 걸 결정하는.
8.
고작 2주밖에 안되는 방학인데, 우울하다. 밖에도 못나가고. 이러다 코로나라도 걸리면 양식없는 초등교사라고 지탄을 받을 게 뻔하니 딱히 무얼 할 수도 없다. 나의 우울은 또 다른 누구를 향한 분노가 된다. 나는 이리 방콕하는데 저 커피숍이며 술집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니! 결국 걸리면 재수없는 거 밖에 안된다. 이게 무어람.
9.
나도 다른 사람에게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서 아이들에게는 그러면 안된다고 이야기를 한다. 참 이율배반적이지만 그래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당당하게 그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바담풍을 해도 너희는 바람풍을 해야지. 그래도 선생님은 그것이 옳은 길이라고 믿는단다. 현실은 이래도, 그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는 더 야만사회가 될 터이니.
결론
그래도 이상을 가르쳐야 한다. 현실은 바닥이더라도.
10.
대학이 정점이 아님을 다 알면서도 그래도 기회의 사다리로 대학을 이용하고 있다. 그리하여 입시는 점점 공고해 진다. 물론 대안은 없다. 유튜버 들이 많이 생겨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한다. 굳이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잘 사는 직업들이 많이 필요하지 않는가? 다양한 직업으로 학력이 아닌 실력만으로 적당한 생활을 영유할 수 있는 그 날 입시가 없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11.
다만, 입시사회로 가면서 점점 능력주의로 빠져드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돈이 있는 사람이 사회의 최상층에 있듯이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 학교의 최상층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서로 계층을 만들면서 서로를 향해 비난과 혐오를 내뱉는 사회는 발전이 될 리가 없다. 누군가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이 되어 버리고 마는 구조니까. 이상을 가르친다고 마음을 먹었어도 마음이 여전히 불편한 이유다. 내가 스스로 당당해져야 한다. 이상을 가르친다고 시궁창 같은 현실이 바뀌냐에 대한 대답. 어느 CF에 나온 말처럼.
적어도 나와 만났던 아이들은 삶을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그랬으면 좋겠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