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쁜 교육, 조너선 하이트 외, 프시케의 숲
죽지 않을 만큼 고된 일은 우리를 더 약해지게 한다. 너의 느낌을 믿어라. 삶은 선한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 사이의 투쟁이다. - 미소포노스(?)의 지혜(??)
미소포노스는 실존인물이 아니며 따라서 저 이야기도 진실이 아닌 비진실일 뿐이다. 대단한 비진실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대단한 비진실이라. 아닐 비와 참진이 함께 붙으면서 어감이 참 묘하다. 참이라 믿지만 실은 참이 아닌 명제라고나 할까? 이런 것들이 되려면 1) 고대의 지혜와 모순되어야 하고 2) 현대 심리학 연구결과와의 모순되어야 하며 3) 그 명제가 개인이나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거짓의 끝판왕인데, 아주 그럴싸하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지 않으면서 공동체에 나쁜 명제라는 거다. 저 위의 세 명제가 그렇다.
죽지 않을 만큼의 고된 일이 우리는 더 강하게 한다고 한다. 옛 성인의 말이다. 하지만 인간의 고통을 회피하는 본능이 있다. 아무리 성장을 위한다고 하지만 굳이 고통을 받을 이유는 없다.
No Pain, No Gain
or
No Gain, No Pain
너무 단순한 비교 같긴 하다. 하지만 무얼 선택할 것인가? 전자를 이야기하지만 누구나 후자가 더 좋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런 방법도 통할지도.
More Gain, Less Pain
우리는 이걸 가성비, 효율적이라고 부르지 않는지. 꿀팁인 것은 맞지만 열매만 취했을 때, 다른 상황의 대처능력이 딸리는 것을 다들 경험했을 거다. 검색이 그 부분을 대처할 순 있겠지만 결국 그러면 자기 결정권만 없어진다. 결정해야 할 때 계속 핸드폰만 뒤지고 있다면 그게 과연 지혜일까? 올바로 사는 것일까?
느낌을 믿어라는 말은 요즘에 많이 쓰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건 개인의 취향껏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사용되는 말이지, 중요한 것들을 적용할 때 사용될 수 없는 거다. 느낌상 코로나 안 걸릴 것 같으니 마스크를 벗어도 될까? 너무 심한 표현일까? 아무튼 그렇다.
마지막 문구는 나도 좀 흔들렸다. 맞지 않는가? 악한 사람만 없으면 세상은 좀 더 살기 쉬울 텐데. 조두순 같은 사람들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타인에게 관대한 시선을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왜냐면 그게 공동체를 유지시켜 주는 힘이기 때문에.
누구를 배제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순간, 그 배제하는 이유가 처음에는 확실할 텐데 점점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물론 조두순 같은 예는 여전히 선택이 어렵겠지만, 처벌을 받고 공동체로 들어왔을 때 함께 살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게 맞을 듯하다. 물론 감시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지.
나쁜 교육이라는 건, 바로 사회 속에서 만연되어 있는 저 비진실에 타협하여 아이들을 길러내는 것이 아닐까? 과연 내가 무슨 잘못을 하면서 아이들을 보고 있는지 좀 더 깊게 고민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