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형태만 다를 뿐 목표 동일하다.
1.
2월 한 달 동안 이래저래 준비하면서 작년에 있었던 원격과 등교사이의 갈등을 좀 좁혀보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결정은 늘 논란을 낳고, 누구나 만족하는 최선의 안이란 존재하지 않더라. 불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학부모의 그 성난 목소리와 눈빛들은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가슴에 꽂힌 비수하나가 된다. 의심하고 걱정한다. 교사들만 편한게 아니냐고.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고, 내가 학부모라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학부모도 교사의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는 걸 이해해 주면 안될까?
서로를 꼬집는 말은 서로에게 상처만 된다. 똑같은 말이라도 이왕이면 서로를 이해해주고 걱정하는 말로 위로해 주면 좋으련만 팩트를 전달한다면서 아픈 말만 해댄다. 그렇게 건조하게 일로만 처리되는 게 교육이였으면 정말 좋겠다. 굳이 교사가 없어도 AI가 대신 가르치고, 프로그램 돌리고, 학습지로 풀리고, 시험만 봐도 될 것 아닌가? 아. 내 일이 없어지겠군. 그럼 나는 또 다른 일을 하면 되겠지. 하지만 그런 것들로 아이들이 과연 잘 자랄 수 있는지.
2.
내가 읽고 있던 책 (지금은 잠시 덮고 있지만, 책 제목이 나쁜 교육이다.) 에서 '사람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믿지 않고 경험적인 것들만 믿으려 한다'는 부분에서 진심 맞장구쳤다.
'아이를 키워보니 굳이 학교를 안 보내도 되겠더라. 오히려 학교에 가면 상처 받는다. 그냥 출석 인정해 주고, 컨텐츠 중심으로 수업하면 안될까? 실시간 수업 꼭 해야 할까? 눈도 나빠지고 컴퓨터 앞에 있는 것 보기 싫은데..'
사람마다 다른 경험이기 때문에 맞다 틀리다는 조심스럽지만, 확실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건 초등학생들의 사회성이라는 건 결국 사람들을 만나고 겪으면서 생기는 거지 랜선을 통해서 이뤄지는 건 한계가 있다는 거다. (이런 논문은 많지 않은가?) 뭐, 결정적 시기이니 뭐니 그런 말들을 굳이 끌고 들어오지 않아도 충분히 예측가능한 말들인데 저런 이야기로 자신의 아이를 그냥 놔두고자 한다면.. 실은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척이나 제한적이다.
방임일까? 그럴수도 있지. 하지만 그 말을 꺼내기는 어렵다. 적어도 그 분은 자신의 생각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거니까. 그 분의 선택이 선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선 수용해야 한다. 그 선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그 분이 생각하는 게 다를 때 참 난감할 때가 많긴 하다.
3.
작년과 같은 원격 수업을 하지 않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실시간 쌍방향 수업. 결국 화상툴을 이용해야 할 것 같고, 그것이 zoom을 활용해야 할 것 같다. 이학습터에 있는 툴도 안정되면 쓸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zoom을 사용한터라 이걸 또 가르치고 익숙해 지려면 아무래도 기회비용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래서 기술은 선점이 중요한가 보다.
그게 어떤 형태일까? 결국은 수업과 비슷한 형태가 아닐까 싶다.
동기유발은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재미있는 2~3분짜리 동영상을 볼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설명? 혹은 스토리텔링식으로 PPT를 보여줄 수도 있고. 그게 끝나면 각자 할 수 있는 개별학습 과제를 주고 개별적으로 진행. 이 때에는 굳이 zoom을 봐야 할 이유는 없어진다. 궁금한 게 있는 친구들은 채팅창에 물어보면 되고, 교사는 즉각 답을 해 줄 수 있을 듯 하고. 정해진 시간에 모여서 채점 또는 확인. 각자 발표할 기회도 주고. 그러다 보면 40분은 쉽게 가지 않을까?
실제로 교실에서도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40분 내내 강의를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던데, 그건 비효율적이다. 차라리 ebs를 보는 게 낫지. 결국은 담임과 학생들과의 호흡인데, 대면이 아닌 비대면이라 친밀감이 떨어지는게 문제다. 등교때 최대한 학생들과 어울려야 한다. 마스크 끼고라도. (얼굴인식도 안되는 지금의 현실은.. 참으로 슬프다..)
4.
예년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예년만큼 가려고 노력을 해야 하겠지. 익숙하지 않아 불편하겠지만 그 길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꾸 이런 것들로 이게 좋네, 저게 좋네 발목을 잡아봤자 고민하는 시간만 길어지게 된다. 결정되면 일단 해 보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를 다시 해결하는 편이 낫다. (이 때 제일 싫은 사람이, 거봐 내가 뭐랬어 안된다고 했잖아 하고 옆에서 비꼬는 사람이다. 그렇게 비꼬면 더 좋은 방법이 나오는가?)
5.
작년에 받았던 상처들을 올해는 받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준비는 하고 있는데.
그 상처의 기억은 생각보다 깊어서 가끔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 주저하게 된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주고, 너무나 쉽게 잊는다.
6.
사람이 제일 어렵다는 건.. 역시 진리인 듯.
그래. 희망이 되는 사람들만 보고, 내가 희망이 되도록 노력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