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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쌤 Jul 11. 2020

부모와 자식. 그 가깝고도 먼 사이에 대하여

학생들과 상담하며 <권력과 인간>을 느낍니다.

  학급에 쓸 달력이 없었습니다. 일반적인 학사 운영이었다면 이미 3월에 일괄적으로 학급 달력이 학교 차원에서 배부가 되었을 텐데 이런 위기 상황에 세밀한 준비를 기대하면 안되겠지요. 집에 돌아다니는 시골 할머니 댁에 있을 법한 달력을 가져갔습니다. 요즘 아이들 취향과는 너무 거리가 먼, 하지만 가독성을 뛰어난 달력을 한 장씩 찢으며 아이들과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참을 찢어야 오늘이 나오니, 아이들도 저도 소름 끼치게 놀랐던 기억도 납니다.     

  아이들과 대면상담을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가 무서운 것은 사실이지만 인문계 고등학교가 처한 현실도 무섭습니다. 1:1로 탁 트인 공간에서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이야기를 나누면 되겠지 싶어서 진행합니다. 단체로 있을 때는 조용하던 녀석들이 담임과 혼자 있으니 자기 속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냅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는데, 어찌 보면 늘 고민과 선택의 연속인 것이 인생인데 자꾸만 정답을 강요하는 세상 앞에 요즘 아이들은 참 많이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선생이란 자가 아이들에게 해답을 줄 수 없어서 괴로울 뿐입니다. 그저 사랑하는 것밖에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뿐입니다.     


  그런데 최근 아이들을 상담하며 서로 다른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공통적으로 말하는 내용들이 있습니다.      

  “쌤, 우리 엄마, 아빠는 살짝 꼰대같아요. 그래서...”

  “엄마랑은 (성적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깊게 하지는 않아요. 작년에 성적표 한 번 보여드렸는데 한숨을 쉬셔서...”

  “아빠랑 말이 잘 안 통해요. **대학교 정도는 갈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현재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부모님 세대가 벌써 ‘꼰대’ 소리를 들을 세대라는 지점에서 놀랐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 아이들의 부모 세대의 생각도 이해가 되고, 제 반 아이들의 생각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부모와 자식. 세상 그 누구보다 가장 가깝고, 그러면서도 가장 먼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과의 상담에서 저 역시도 제 부모와 저를 그려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른 사실(史實)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임오화변’입니다.     

  하필이면 이즈음에 <한중록> 수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가장 지루해하는 고전 소설을 공부하다보니 어떻게 해서든 오늘의 우리네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데요. 감사하게도 몇 년 전에 좋은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수업 시간에 잘 활용했습니다. 영화 ‘사도’입니다. 그러다가 제 개인적 호기심이 물씬 들어서 책 한 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정병설 선생의 ‘권력과 인간’입니다.     




  역사는 선악의 이분법으로 간단히 재단되지 않는다. 사도세자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사도세자의 시각으로만 보는 것도 경계할 일이다. 사도세자의 죽음에는 수많은 백성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세자의 지위에서 끌어내리면서 쓴 글에는 사도세자가 죽인 무고한 사람만 백여 명이라고 했다. 사도세자의 살인은 <영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이들이나 그 가족의눈으로 본다면 세자는 진작 죽었어야 했다.     


  이런 까닭에 저자는 다각도로 사도세자 주변 인물들을 탐색합니다. 사도세자의 가족이었던 아버지 영조, 서류상 어머니 정성왕후, 생물학적 어머니 선희궁, 할머니 정성왕후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갖고 있었던 결함들이 사도세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까지 말입니다. 가장 크게 영향을 끼쳤던 존재는 단연코 아버지 영조입니다. 그는 사도세자에게 아버지이자 임금이었으니까요.     

 

  사도세자는 만인의 관심과 기대 속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부왕의 기대에 부응해 곧잘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채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영조를 실망시키기 시작했다. 공부를 싫어한 것이다. 사도세자는 밥 먹기는 좋아하고 책은 싫어한 뚱보 아이였다. (...) 물론 세자가 우둔하고 무식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영조가 바라는 자기 수양이 잘 된 엄격하고 성실한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학자라기보다 예술가였다. (...) 영조는 신하나 다른 아랫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세자를 꾸짖고 조롱하기 일쑤였다. 세자는 엄격하고 까다로운 아버지의 눈을 피하고 싶었으나 도망칠 곳이 없었다.     


  혜경궁의 절절한 감정이 고풍스럽게 담긴 <한중록>에서 혜경궁은 자신의 시아버지인 영조에 대해 꼼꼼하고 치밀한 성품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남편인 사도세자는 아버지만큼의 민첩함이 없다고 평하지요. 핏줄을 이어받았지만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왕위 계승이라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 갈라서게 된 것입니다.      


  임금이 매번 엄히 꾸짖으니, 세자가 걱정스럽고 두려워 병이 더하였다. 그러다가 임금이 거처를 경희궁으로 옮기자 임금과 세자, 두 분 사이가 멀어져 더욱 의심하면서 소통이 되지 않았다. 또 세자는 환관, 기생과 절도 없이 놀면서 하루 세 차례 임금께 드리는 문안 인사도 전혀 하지 않았다. 세자가 임금의 뜻에 맞지 않았으나 다른 아들이 없었으므로 임금은 나라를 위하여 매번 근심했다.     


  일생을 여리박빙의 자세로 살았을 영조에게 유일한 아들인 사도세자의 활달한 품성은 성에 차지 않았던 셈입니다. 칭찬 한마디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계속 코너로 몹니다. 그래야 아들이 임금다운 임금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들은 그럴수록 자신감을 상실해갑니다. 아버지가 무서워집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대화를 차단합니다. 가장 가까웠던 부자 사이가 가장 멀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오해는 오해를 불렀고, 미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칼날같은 말과 행동을 던집니다.     


  그랬기에 아버지는 아들의 가장 예뻤던 행동이 죽여야 할 행동으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사도세자가 어린 시절, 사치를 쓰더니 비단을 가리키며 이것은 사치고, 안에 입은 무명옷을 가리키며 이것은 사치가 아니라고 했을 때 그렇게 크게 웃었던 영조가 용포 안에 무명옷을 입은 28살의 사도세자에게는 아비 죽으라고 저주하기 위해 입었다고 뒤주에 가뒀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어렵고 두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마다의 인생살이 속 고난과 고달픔이 지금의 스스로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굴곡을 누가 함부로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 있겠습니까. 영조에 대해서도, 사도세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가를 하지는 않으렵니다. 각자의 삶의 바퀴가 흘러가는 모양새에 따라 형성된 사람 개개인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상황의 비극이라 생각할 뿐입니다.     

  이런 사실(史實)을 보며 배우는 점은 하나입니다. 아이들과 아이들의 부모님이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대화를 하기를 말입니다. 쏟아지는 정보는 많아서 아는 것은 많은데 내 성적은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학생 수도 줄었다는데 왜 이 대학교를 못가냐, 학원을 다니는데 왜 성적이 안오르냐 답답함을 호소합니다. 부모에게 아이들은 늘 죄인이 됩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부모님께 비밀이 많아집니다. 부모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가장 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부모는 아이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많아집니다.      

  사랑해서 생기는 기대감과 책임감의 문제라 봅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해결하기를 바랍니다. 저에게 하소연을 하며 울었던 우리반 아이들이 다음주 등교 때는 부모와 대화를 하며 잘 풀어나갔다는 이야기를 웃으며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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