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전쟁같은 2학기가 시작되었네요. 건강은 잘 챙기고 계실지...
끌고 올라간다는 말을 현장에선 쓰지요. 제 첫 고3 담임 학년이 그렇습니다. 대입을 위한 소위 '스펙'을 쌓을 수 있는 최전성기 고2에 코로나19를 만나버려서 얇은 생기부를 갖게 된 본격적인 아이들과 작년부터 올해까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자소서는, 아무래도 전국이 다 그럴 것 같습니다만 1학년 때 생활을 소재로 쓴 경우가 많더군요. 아무리 2학년 때 이것 저것 시켰는데도 역시 몸 부대끼며 학교에서 생활한 경험이 아이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선배 학년들보다 학교에서의 활동이 많이 차단된 상태인데 하필이면 올해부터 대입을 많이 바꿔나가더군요. 적성고사도 폐지되고, 교과 전형이 늘어서 종합 전형 선발 인원 수는 줄고... 원래부터 예측하기 어려운 대입인데 올해는 새로운 데이터가 쌓이는 해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모의고사 날이면 결석생이 늘어나고 연휴 앞뒤로 조퇴 결석을 쓰는 아이들을 보면서 한숨은 늘고 가슴은 쓰라립니다만 학급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위해 노력하는 다수의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 날이 지나 벌써 9월입니다.
9월 모의고사의 중요성은 담임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알고 있더군요. 특히나 내신이 안좋아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쓰기 어려운 학생들이나 예체능 학생들은 9월 모의고사 성적이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제 학급은 내신 성적이 낮은 학생들도 많고 예체능 학생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9월 모의고사에 임하는 아이들의 눈빛은 1학기 때보다 많이 달랐습니다. 쉬운 국어 문제를 풀면서 아이들 등급이 걱정되었는데 가채점 결과를 보며 걱정이 현실로 보였습니다. 특히나 올해 인문사회계열 학생들의 수학 등급이 정말 정말 걱정이라 아이들이 기댈 곳이 별로 없었는데 말입니다.
아무튼 그 비장했던 제 학급의 아이들 중에, 뚱한 표정으로 생활했던 무표정의 아이가 9모 다음 날 복도를 걷던 제게 다가오더군요. 표정 변화가 크게 없어서 학년 초에는 담임인 나를 싫어하는 건가 싶은 걱정도 들었던 아이였는데 말입니다. 갑자기 왜 다가오는 것인지 내색 못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 한 마디를 꺼냅니다.
"쌤, 저 어떻게 해요.."
"왜? 모의고사 때문에 그래?"
"네... 점수가 안올라요..."
울먹이며 말하는 내 반 아이에게 무슨 위로를 할 수 있을까요? 그저 11월 수능까지 노력을 내려놓아서는 안된다고 힘내라고 할 수 있다고 어깨를 두드렸습니다. 눈물을 쏟는 아이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이 아이 뿐일까요? 당장 며칠 뒤부터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인데 고3 교무실은 어디나 난리통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희도 담임 선생님들이 자기 책상 옆에 아이들을 한 명씩 끼고 원서 접수할 대입 상담을 8월부터 계속 진행 중이니까요. 내 수업을 안듣는 학생들 속에서 내 수업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수업은 계속 하고 공강 시간에는 우리반 아이들을 상담하고 자소서 수정해주고 방과후에는 아이들을 불러 상담하고. 이런 날이 반복되며 내 반 아이들에게 원인 모를 전우애와 애착이 생김을 느낍니다. 1, 2학년 담임일 때와는 다른 이 느낌을 받으며 고3 담임 자리가 갖는 묘한 기운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바쁘고 힘들고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참 많은데 10대의 마지막에 겪어야 하는 장애물을 함께 하는 것이 고3 담임의 숙명이자 행복일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오는 주에도 또 아이들은 결석을 예고할 수도 있고 상담을 와서 울 수도 있겠습니다. 수업을 안듣다가도 자소서 첨삭을 부탁하러 올 수도 있고요. 그럼에도 고3 담임으로서 전국 각지에서 저와 비슷하게 힘들게 생활하실 선생님들을 떠올리며, 19살들의 전우로서 버티고 또 버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