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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쌤 Feb 15. 2020

<표현의 기술> 수업의 기술

생활 속 수업 아이디어

 어제도 여전히 혼이 빠졌다. 눈이 초롱초롱한 학생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저 힘이 솟는다. 그런데 20대 때와는 다른 점이 예전에는 그렇게 에너지를 발산하고도 금방 충전이 되었는데, 이제는 수업 때 혼을 쏟아 내면 충전되는데 시일이 꽤 걸린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어제도 그렇게 방전 상태였다. 방전 상태에 멍하니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며 부재 상태에 연락 온 쿨 메신저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중이다. 문득! 아! 이렇게 인생 살면 안 된다.는 생명의 강한 외침을 느꼈다. 삶의 유한성을 30이라는 숫자 앞에서 문득! 느끼면서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루하루를 보내고 늙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 나를 표현하고자 함에 이제는 내 밑천을 드러낼까 두려워 표현하지 않고 있었는데, 그 밑천을 다시 채울 생각을 하지 않고 글쓰기를 미루는 나의 한심함이 죽음 앞에서 얼마나 초라할까 싶었다.


  그렇게 나는 학교 도서관으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책을 2권 빌렸다. 하필이면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작문의 과정’이었기에 유시민 선생의 <표현의 기술>을 빌렸고, 경제학은 나의 지식이 얼마나 미천한지 알려주는 분야이기에 단단한 근육을 만들어 보고자 <경제학 산책>을 빌렸다. 뒤의 이야기지만, 일반사회 선생님께 내가 빌린 책을 보여 드리고 나 같은 무식이가 읽기에 어떠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아무래도 ‘산책’같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하셔서 낙심 중이다. 하지만 <표현의 기술>은 하루 만에 섭렵할 수 있을 정도로 편했다.



  작가 특유의 구어적 문체 덕분에 <썰전>에서 늘상 듣던 그 목소리가 내 옆에서 이야기해주는 듯, 편안했고 작가의 굳은 심지가 문체 속에 날카롭게 표현되는 부분에서는 한때 정계에 몸 담았던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작가와 다른 의견을 던질 수 있음을 글 속에서 작가는 계속 인지하고 있어, 논리적 반박을 밝히는 모습에서 100분 토론 때의 날렵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글 속에서 이견에 대한 반박이 꽤 자주 진행되어 왜 이런 글쓰기를 진행하였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얼마나 많은 이견을 접하게 되면 이렇게 미리 준비를 할 수밖에 없을까 라는 생각과 결국 나의 생각을 표출하기 위해 만드는 책 속에서까지 편안하게 생각을 표출할 수 없는 작가의 처지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의문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에서 책을 시작하고 있다. 그의 관심은 정치였고, - 물론 이 때의 정치는 우리가 늘 사용하는 의미의 ‘정치’는 아니다. - 이를 달성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를 표현한다고 했다. 작가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를 위해 글을 쓴다고 했다. 보다 나은 세상은 무엇일까, 잠시 생각했다. 내 관점에서 보다 나은 세상은 나와 생각이 비슷한 무리에서는 좋은 세상일 게다. 그런데 나와 생각이 동일하지 않은 이에게 나의 청사진은 지금보다 나쁜 세상일 수 있다. 다원화 사회 속에서 과연 그 기준을 어디에, 어떻게 맞춰 사회가 나아가야 할지 스스로에게 되묻게 되었다.


  작가의 글쓰기 당부에 대한 다양한 조언들이 실려 있었다.

  어떤 목적의 글쓰기인가?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 표현하고 나서 어떤 부분을 되짚어야 하는가?

  국어과 교육과정 중 작문 교육과정에서 늘 가르치는 내용이다. [계획하기] - [내용 생성하기] - [내용 조직하기] - [표현하기] - [고쳐 쓰기] 이 과정에 대한 작가 특유의 경험담을 그의 체취가 물씬 느끼는 문체로 전달하고 있어, 자기소개서라 쓰고 자기소설서라 읽는 것을 필요로 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을 앞둔 10대 학생들에게도 쉽게 읽힌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글쓰기의 전범일 수는 없다. 그리고 이 책이 글쓰기의 첩경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절대, 결코! 글쓰기는 스스로의 노력이 없이는 쌓일 수 없는 부산물이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코 다른 이의 길로 걸어 나갈 수 없는 목적지이다.


  그러니 <표현의 기술>을 읽고 좋은 글을 써내려 갈 수 있다 판단하면 오산이다. 작가의 조언과 당부를 통해 먼저 걸어간 이의 좋은 사례를 토대로 나만의 길을 개척해야 나만의 표현의 기술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정훈이 선생의 만화가 정말 맛깔나게 들어가 있다. 글을 읽다가 글의 흐름을 깨뜨릴까 만화는 손가락으로 해당 쪽을 껴서 나중에 읽곤 했다. 감칠맛이 제대로 나는 만화라 즐거웠다. 그리고 11장의 정훈이 선생의 만화는, 참 담담하지만 울림이 있는 만화였다고 생각한다.)


점심시간을 잃고 책을 얻어 부디 살 찔 것과 살 빠질 것이 구분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2017년, 이름을 들으면 입이 떡 벌어지는 학교에서 수업 준비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록 중 하나이다.

수업에 제대로 사용한 글은 사실 이 책은 아니었다. 다만 수업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많이 준비한 덕분에 자신 있게 수업에 임할 수 있었고, 꽤 즐겁게 작문 파트를 수업했었다. 기실 어떤 수업인들 이 시기에 재미가 없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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