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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 Oct 02. 2021

내 안의 평화

묻지 마 칼부림 사건

 공원의 노숙자가 술을 마시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커다란 페트병의 술을 병나발째 마시며 혼잣말로 욕을 하고 있어 위험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아마 산책하던 시민이 신고한 것 같았다.   

  

 그런데 현장에서 만난 사람은 의외로 익숙한 얼굴이었다. 두 달 전쯤 술에 취해 행인과 마찰이 있어 사건 처리가 됐던 인물인데 벌써 1년 가까이 공원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거의 노숙하는 중이었다. 그때 알았다. 그가 원래 혼잣말을 잘하는 사람인이란 것을, 그래서 누구라도 우연히 보면 호기심이 일게 되고 그것이 다툼으로 번진다는 것을.     


 “혹시 여기서 술을 드셨나요?”

 “무슨 술을 마셔요? 혼자 밥 먹고 물 마신 거예요”     


 벤치에 앉아 코펠의 음식을 먹고 공원 화장실에서 담아온 물을 마신 것뿐이라며 페트병을 흔들며 직접 마셔보라고 어눌한 말투로 억울해했다. 혼잣말 잘하는 사람답게 음성이 높았고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평소 말투가 그런 건지 아니면 술을 마셨다고 오해받은 것이 억울해 그런 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페트병의 내용물이 실제 물인 것을 확인하고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술 드셨다고 나온 건 아니고요, 혼자 큰 소리로 욕을 하니까 그렇죠?”

 “무슨 욕을 했다는 거예요?”     


  억울해하는 그에게 달리해 줄 말이 궁색해 욕을 하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오히려 정색했다. 난처했다. 큰 소리로 혼잣말하는 걸 욕으로 오해했을 수도 있단 생각이 그때 서야 들었다. 신고자 역시 멀리서 본 것이고 별다른 피해는 없지만, 좀 위험해 보여 신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지난번에 낮에 지구대에 한번 좀 오시라니까 왜 오지 않았어요?”


 엉뚱하게 지난번 사건 때 지나가듯 했던 말이 떠올라 던졌지만, 그가 진짜 한번 지구대에 오지 않은 것을 책망했다기보단 지금의 난처한 상황을 모면해 보자고 그랬던 것 같다.     



 오십 대 중반의 그는 공원 주차장에서 집도 절도 없이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달리 위법한 행동은 없지만, 혼잣말을 잘하는 그에게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호기심에 말을 걸기도 했었다. 그만큼 순진해 보이고 어떻게 보면 정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날도 젊은 행인들과 그런 과정에서 마찰이 생겨 사건이 생겼고 그 사건으로 인해 어렵게 자신에 대해 몇 가지 털어놓았었던 적이 있던 것이다.     


 그가 왜 노숙인지, 차박인지 모를 모호한 생활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베트남 출신 부인과의 사이에 중학교 1학년 아들이 있고 지금도 막일로 돈이 생기면 가족에게 보낸다고 하는 걸 보면, 아주 집이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부인과 잘 지내지는 못해 집에는 돌아갈 수 없다고 했는데, 그에게 폭력적인 모습은 찾기 어려웠고 오히려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아무튼 자세한 얘기를 좀 더 듣고 싶어 낮에 지구대에서 한번 오라고 했던 말인데, 대개 그렇듯 그에게도 지구대 문턱이 그렇게 낮은 곳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니 누가 혼자 식사하는 걸 보고 걱정돼 신고했던 모양이에요”     


 있지도 않은 말로 급하게 위기를 모면하고 혼잣말도 음성을 좀 낮추라며 억지로 훈계했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위신을 겨우 세우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철수했다. 공원은 취사 금지라는 안내문이 있었지만, 그가 실제 취사를 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 음식을 먹는 일은 다른 시민들에게도 흔한 일이었다.     



 하루 전 인근의 다른 공원에서 소위‘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있었다. 정신이상자가 산책 중인 연인을 향해 칼을 휘둘러 피해자의 손목에 꽤 큰 상처가 생겼고 SNS나 언론 보도로 온 도시가 뒤숭숭하던 날이었다. 

     

 공원의 순찰을 강화하라는 지시사항이 기계적으로 하달되기 시작했고 불안한 시민들은 공원에 이상한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하기도 했다. 그전까지 아름다운 호수공원이었다. 


 교통사고도 싸움도 전혀 없던, 그러니까 그냥 아름다운 호수공원이었는데, 하루 만에 지옥으로 바뀌었다.          


 



 자본주의는 규모의 경제를 먹고 살기 때문에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가 비대해지는 걸 내심 반긴다고 한다. 그렇게 비대해진 도시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는 여러 가지 갈등 상황에 직면하곤 하는데, 때론 이유가 없거나 오해로 비롯된 갈등이 야기되기도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시작을 추적해보면 선의일 때도 있다. 사회 시스템에 의해 그러기도 하지만 무지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란 걸 생각하면, 세상이 차가운 쇳덩이처럼 느껴져 서러울 때가 있다. 수많은 우연 속에서 그저 살아갈 뿐, 세상의 어떤 신념도 유효하지 않은 것 같아 이제껏 속은 것 같기도 하다. 정의도 없고 권선징악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거 같다.     


 공원의 노숙인이 나의 말에 느꼈을 억울함을 생각하면 한없이 까마득하다. 오죽하면 노숙하며 공원에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때론 술을 마시겠나? 

 나는 집에서 밥을 먹고 정수기의 물을 마시며 때론 술집에서 술을 마신다.      


 어찌 갚을 것인가….     


 불교에서는 대상과 감각기관이 접촉하여 인식이 생기는데, 그 과정에서 미리 가지고 있던 ‘업식’에 의해 분별이란 놈이 작동하여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전도몽상’이 생기고 그러한 ‘식’이 쌓여 지혜와 거리가 먼 견해가 생긴다고 가르친다.      


 선입관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대상에 미리 가지고 있던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을 말한다고 한다.     


 한없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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