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듣기
휴대폰 위치값이 정확하지 않았다. 보통 와이파이 값으로 잡히면 5m 안에 들어오는데 셀값으로 잡히는 경우, 반경 1km에서 5km까지 나와 수색이 쉽지 않은 편이다. 더구나 정연이의 휴대폰은 on/off를 반복하며 위치값이 바다 한가운데로 나오던 것이 엉뚱하게 기존의 위치에서 직선거리 1km 정도 떨어진 동네로 나오는 오작동을 보이며 계속 혼선을 주고 있었다.
난감했다.
정연이의 보호자가 딸이 연락되지 않는다며 지구대를 찾은 건 밤 10시쯤이었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이미 낮에도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부모에게 보내서 주간 근무자들이 인근에서 아이를 찾아 보호자에게 인계한 이력이 있던 차였다. 그런 정연이가 아빠 차를 타고 귀가하다가 산책을 하겠다고 해서 공원에 내려 준 것이 초저녁인데 이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한번 찾아줬는데 이런 식으로 다시 신고가 들어오면 사실 좀 짜증이 나기도 한다.
전화를 걸어보면 전원이 꺼져 있기도 하고 다시 걸어보면 신호가 가지만 받지 않는 걸 보면 스스로 on/off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 시간쯤 후 다행히 전화가 연결됐다는 무전이 현장으로 날아왔다. 사무실에서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하다가 용케 연결된 것인데 인근 다리 밑 난간에 있다고 했다. 전화상으로 죽고 싶다며 울면서 짜증을 내고 있다는 정보도 덧붙였다.
급하게 순찰차를 돌려 다리 위로 향했다. 바다와 호수 사이에 놓인 다리는 1km가 안 되지만 규모가 꽤 있는 편이라 정확히 어디에 그녀가 있는지 감은 오지 않았다. 운전자는 좌측을, 조수석은 우측을 관찰하며 천천히 운행하며 관찰해야 했다. 그렇게 다리 중간쯤 이르렀을 때 다리 밑이 어디를 말하는지 불현듯 감이 왔다. 차를 세우고 다리 보수를 위해 설치된 난간으로 향했다. 사람이 보행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20m 이상 높이의 철제 구조물이어서 여고생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다행히 그곳에 정연이가 쭈그리고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최초 신고가 접수되고 약 3시간이 지난 후였다.
추위에 떨면서도 정연은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웃고 있지만 어색함을 감추려는 그 웃음이 그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그녀의 고집도 어색했다. 우선 경찰 잠바를 벗어 등에 덮어 주었는데 다행히 거절하지 않았다. 우선 그렇게라도 같이 있으면서 그녀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입을 열지 않던 그녀는 자기에게 잠바를 벗어주고 떨고 있는 경찰에게 미안했는지 조금씩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다 죽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막연했지만, 그 또래, 특히 여자아이들에게 흔히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구체적으로 누가 죽었으면 좋겠는지 범위를 좁혀보려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하는 모든 말이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아서 괴로워요.”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어차피 이해하려고 그곳에 나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럴 수 있다며 수긍의 강도를 조금 높였다. 다행히 정연이도 약간 교감하는 눈치였다.
“엄마한테는 미안해요.”
너무 괴로워 죽고 싶다며 11월의 바닷바람을 맞으면 다리 아래 난간에 세 시간을 숨어 있는 녀석이 엄마에게는 미안하다고 하는데 저가 지금 엄마 걱정할 때인가 싶어 현실성 없는 말로 들렸다. 그렇게 나올 듯 말 듯 간간히 나오는 십 대 소녀의 투정 같은 말을 30분쯤 듣다가 너무 추워 인제 그만 들어가자고 했는데 다행히 정연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두어 시간 추위에 뻣뻣해진 몸은 십 대도 어쩔 수 없는지 움직임이 둔했고 고작 30분이었지만 중년의 몸은 감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저 일어 나주는 정연이가 오히려 고마웠다. 나오면서 그곳에서 바닷물로 뛸 작정이었냐는 말은 차마 물어보지도 못했다.
지구대에서 언 몸을 녹인 정연이는 마음이 좀 풀렸는지 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함께 갔던 정신과에서 다른 아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자신을 야단치듯 말했다는 의사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가며 적의를 표시하거나 입시 정보에 대해 질문하는 자신을 답답해하던 담임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운한 사람으로 묘사했다. 병신이라며 험한 말을 해놓고선 장난이었다며 그렇게 예민하게 굴 거 없지 않냐는 또래에게는 눈물을 글썽이며 괴로움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얘기 끝에는 엄마에 대해 미안함을 또 잊지 않았다.
솔직히 그 나이에 그 정도 고민 안 해 본 사람이 어디 있겠냐며 되물을 만한 것들이었지만 기왕 듣기로 한 거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들었다. 어차피 이해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니까. 다행히 정연이는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처음에 비해 마음이 꽤 풀리고 안정도 된 거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대화하다가 지구대 밖에서 기다리던 보호자를 불러 정연이를 인계했다. 그렇게 정연이는 수줍은 인사를 남기고 돌아갔다.
생각해보면 난간에 뛰어내릴지 말지를 고민하는 여고생에게 아무 일 없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부터 시작해 그냥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는데도 그녀의 마음이 안정됐던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굳이 따져보자면 자기 때문에 추위에 떠는 경찰이 불쌍해 보였을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리 되묻지 않으며 묵묵히 들어주었던 것이 주효했던 거 같다. 하지만 마지막에 한 가지 충고는 덧붙였다. 혹시 진짜 충고처럼 들릴까 봐 조심스럽게 말하긴 했지만 말이다.
“누구보다도 지금 정연이 자신이 제일 힘든 거 같으니까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은 우선은 내려놓아도 될 거 같아…. 엄마에게는 나중에 더 잘해 줄 수 있는 시간이 꼭 있을 거야.”
다행히 정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리 아래 난간에서 30분 동안 추위에 떨면서 그리고 반은 불 꺼진 지구대 상담실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십 대의 투정 같던 말을 한 시간 동안 묵묵히 들을 수 있었던 건 정혜신 박사의 책 제목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경구가 되어버린 그 말을 떠올리며 닥치고 들어야 하는 고통을 참을 수 있었다.
당신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