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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삶 Sep 03. 2021

일곱가지 계절

나의 인연 연대기

유독 뇌가 사부작 거리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이렇게 신경이 예민하게 곤두서거나 활발하게 달아오르는 날에는 도통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다가도 불현듯 눈이 떠지곤 한다. 마치 잠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별수 없다. 뇌던 심장이든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하니 노트북을 켜고 아무 말이나 주절거리는 수밖에.


오늘 불쑥 인연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인생사 사람이 다라고 하지 않던가. 나의 삶도 돌이켜보니 인간에서 시작돼서 인간으로 흘러가고 쌓아가는 역사였다. 고민해보니 중요한 변환점이나 굴곡, 갈림길 같은 것이 특정 사람으로 인해 변하거나 큰 영향을 받은 적이 꾸준히,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내 삶이 얼마나 따분하고 지지부진하게 흘러갔을 것인가를 가정해보니 뒷골이 섬뜩하다. 


나는 기질이 강한 편에 속하지만 동시에 주변 환경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 편이기도 하다. 특히 내가 애정을 가지고 신뢰하는 상대에게는 그 연결점이 강한 탓인지 그들의 여러 성향이나 습관 같은 것에 나도 놀랄 만큼 물들곤 한다. 개인적으로 큰 장점이자 무기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장단점이 있고, 뭐 하나쯤은 나보다 뛰어난 면이 있다. 그것에 흥미가 가고 매력을 느끼면 어느샌가 나도 닮아가거나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현재까지의 30년 삶에서 총 일곱 명이 있었다.


개중에는 평생 친구부터 현재 진행형 베프, 멘토, 연인, 절교 엔딩 등등 다양했다. 


크던 작던 내 가치관이나 생각, 정서, 자아, 경험 상 두드러질 만한 영향과 영감을 준 사람들이다.


중 1때 만나 나의 세계관 형성과 자아에 큰 공헌을 한 개국공신(ㅋㅋㅋ) 친구 A와는 지금도 가장 가까운 친구이고 앞서 여러 번 언급도 된 친구다. 엉뚱하고 솔직히 가끔은 희한한데 그게 좋은, 120% 이과형 친구인데 나와 같으면서도 여러 면에서 정 반대다. 그런데 그게 시너지를 낸다. 어떤 면에서는 나를 가장 편하게 하는 친구다. 반대의 성향이 외려 서로를 보완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이 우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내가 희한하다고 했다고 또 왁왁거릴 테지만 솔직히 너도 너 돌아이인 거 알잖아? 물론 유유상종이라고 나도 돌아이지만)


고1 때 만난 친구 E, 첫인상이 너무 쌔서 당시 순둥이였던 나를 흠칫하게 한 그녀는 보이쉬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친구였다. 함께 짧은 시간 미대 입시를 준비하기도 했었던 시간들이, 별거 아닌 걸로 자존심을 내세우며 우기고, 선머슴처럼 여고를 뛰어다니며 망아치럼 놀던 그때가 참 그립지는 않고 뭉클하고 기분 좋은 추억이다. 나는 그녀의 미술적 재능을 동경했고 무척 귀하게 여겼다. 특히 그녀만의 특유의 강렬한 에너지와 유쾌함, 유머러스함을 사랑했다. 내가 좋아하고 매력을 느끼는 부분을 한데 모아둔 보물창고 같은 친구랄까. 가끔은 기질이 너무 강해 버거울 때도 있었는데 성인이 되어 대학에 가고 남자친구를 만나며 많이 부드러워졌다(그는 현재 그녀의 남편이다). 그녀와의 어린 시절 추억은, 강렬한 여름의 태양 아래 구릿빛으로 잘 그을린 이미지, 톡 쏘는 오렌지 향 과일이 떠오른다. 나는 그녀의 강렬함이 후일 어떤 찬란하고 빛나는 뭔가로 발현될 거라 기대를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바람과 달리 E는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그녀만의 삶을 그리는 중이다. 서로 바빠 자주 연락은 못 해도 만나면 어제 만난 듯 편하고 나도 모르게 깔깔거리는 여고생이 되는 건 우리가 친구이기 때문이겠지.


대학교에 들어가 만난 언니 D는 내게 사회적인 인프라와 성장적 영향을 준 사람이다.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사랑스러웠고 단순한 듯 긍정적이고 강한 생활력, 맹한 듯 똑소리 나는 언니였다. 사실 당시에는 그 언니 대부분의 모습을 편하게 받아들였고 좋아했다. 특히 그녀는 동생인 내가 봐도 귀여웠다. 그녀의 애교스러운 면이 내 안의 막내 기질과 겹쳐서 우리는 별다른 대화 없이도 그냥 장난치고 영화를 보고 잡담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편했다. 나는 특히 D의 복잡하지 않은 낙천성을 사랑했다. 그녀와의 인연이 끊어진 지금에 와서도, 나는 아직도 그녀와 쓰던 특유의 말투를 사적인 대화에서 사용한다. 이미 나의 일부가 된 셈이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집에 살았던, 어린아이처럼 웃으면 눈가가 앳된 고양이처럼 샐쭉해지고 말랑한 뺨에 보조개가 피던 언니. 그녀 덕에 여러 인연도 만났고 미술관 도슨트로 일해보는 경험도 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걸 받았는데 내가 당시에는 철이 없어 몰랐다. 나름대로 아주 많은 보살핌을 받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돌아간다면 더 많은 것을 안겨주고 싶은데. 그 부분만이 유일한 후회다. 


친구 F는 당돌하고 매력적이고 예쁜 아이였다. 어쩌면 나는 기질이 강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마다 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기 색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이 강렬한 사람이 있다. A와 E가 그런 것처럼 말이다(그런 탓일까.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그들은 마찰을 빚고 멀어졌다). F는 열정적이었으며 욕심도 있었고 자기 자신만의 고집과 뚝심이 있었다. 특히 똑 부러지게 자기 생각을 말할 때는 참 멋있었다. 이성적이면서도 여린 면도 있는 친구였고, 나에게 많은 조언을 구했다. 나 또한 그녀의 결단력에 기대기도 했다. 그 상호작용이 좋은 그림을 그린 적이 많았다. 안타깝게도 멀어졌지만 당찬 친구라 자기 길을 잘 가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D와 F 같은 경우에는 내 우정사에서 드물게 대립각을 세우다 멀어진 케이스이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이 부분이 아주 크다. 사람은 실패에서 배우기 때문이다. 그 끝까지도 당시의 미성숙한 송아지에게 큰 영향과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으니 참 감사하고 고마운 인연이다. 


나머지 셋은 현재의 나에게 퍽 큰 영향을 끼쳤던, 끼치고 있는 인물들이다. 


20대의 나는 전반적으로 연애에 있어 매우 회의적이고 냉소적이었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만, 현재의 내가 관조적이고 덤덤한 흥미만 가진 상태라면 그 때에는 좀 더 방어적이라고 해야겠지. 어차피 유통기한 다 하면 끝날 관계, 정도 이상 기력 쏟고 얽매일 필요 있는 건가, 하는…… 겉으론 차도녀고 안은 경계심 많은 송아지였다(나의 흑역사의 흔적이다). 헌데 내가 자연스러운 끌림으로 예기치 못하게 시작하게 된 H와의 연애에서 나는 그야말로 홀딱 빠져버렸다. 애초에 그때까지만 해도 좋아한다, 는 알아도 그립다, 는 몰랐었던 것이다. 사람 보고 싶은 감정이 그토록 강렬할 줄이야. 눈뜬장님이었다. 그의 순수하고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건조한 얼굴에 표정이 다 드러나는, 서툴지만 그래서 매우 직설적인 표현이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슴에 와 닿았다. 격랑처럼 짧게 왔다간 연애는 후유증은 컸지만 남기고 간 것도 많았다. 겨울바람처럼 아린 적도 있었으나 참 달콤 쌉살하니 예쁜 추억이 아닌가 한다. 


일로 만난 관계에서 사적인 지인이자 절반쯤 멘토로, 어쩔 땐 유능한 조언자이고 어느 때엔 찰떡 호흡의 친구인 B와는 장장 6년여에 걸쳐 많은 관계의 변화를 거친 사람이고 지금의 나에게 어떤 부분에서는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이다. 아마 2015년 경, 당시 나는 이십 대 중반에 출간 경력도 없었으니 아직 많은 것이 서툴렀다. 그녀와의 첫 교류가 특별했던 건 나의 작품을 알아보고 인정해준 사람이기에 그랬던 것 같다(사실 얼빠인 나에게 미인인 그녀의 호의 표시는 꽤 효과가 좋았다.). 그리고 우리는 취향이라고 해야 할까, 추구하는 방향이 닮은 점이 많았다. 생각하는 방식도 그랬고, 시니컬하고 안이 꼬인 면이 많았던 나는, 냉철한 면모가 있는 B와의 대화에서 일탈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특히 연상인 B는 전문성과 뛰어난 심미안을 갖춘 커리어우먼이었으니 사회초년생인 내 눈에 그녀가 얼마나 멋있어 보였겠는가(아마 이 부분을 보면 웃을 것 같은데). 당연하게도 나는 그녀에게 많이 배웠고 아직도 흐름이 잘 안 빠지는 글이 있으면 가장 먼저 그녀를 찾는다. 그 밖에 이따금 진지한 토론을 하고 작품 이야기와 덕질, 먹을 것, 엉뚱한 잡담으로 수다를 떨면서 서울의 여러 맛집과 디저트 가게를 털었다. 내가 크고 나서는 몇 차례 갈등도 있었고, 싸웠다가 화해도 하고 참 별별 일이 다 있었다. 취향 소나무답게 이 언니 또한 매력의 기본 조건으로 기질이 강하고, 나와 성향이 같은 듯 정반대의 사람이라 맞추어 가는 데 필요한 과정이었다. 나는 우리를 건축 양식은 같은데 소재는 다른 건물이라고 말하곤 한다(예컨대 내가 붉은 벽돌이라면 그녀는 대리석). 그래서 더 귀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비슷한 듯 많이 다른 우리 둘, 미래는 뭘 하고 있을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상냥하고 다정한 그녀 C, 그녀의 글을 처음 보고 모임에서 볼 때까지만 해도 가벼운 호감으로 시작한 이 사람과 이토록 가까워질 거라곤, 이렇게 편하게 솔직한 얘기를 다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이따금 나는 그녀 앞에서 너무 쉽사리 훌훌 벗고 속 알맹이를 드러내는 스스로를 발견하며 놀랄 때도 있다. 그것도 한 홀의 수치심도 없이 편하고 자유롭게 말이다. 무신론자인 내가 신을 믿게 되어 고해성사를 할지라도, 신뢰하는 상담사 앞일지라도, C와 나누는 대화만큼 내가 느끼고 사유하는 고뇌와 감정 있는 그대로를 고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찬 바람과 비보다 따뜻한 햇볕이 나그네의 옷을 벗겼다는 것처럼, 속이 비칠 듯 투명하고 소탈하게 웃는 C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그러니까 이건, 우리가 그 대화의 순간 완벽히 교감하고 있기에 가능한 감각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정서와 일상에서 찾은 고민에 대한 답을 같지만 다른 색깔로 물들여 서로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 호흡과 생각의 흐림이 너무 자연스러워 우리도 놀라곤 한다. 한 번 통화를 하면 기본 2시간 이상, 어느 때는 네 시간을 훌쩍 넘긴다. 그래도 아쉽거나 끝내고 싶지 않다. 외려 속절 없는 시간이 안타깝다 할 때도 있었다. 아마도 그녀와 나의 결이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큰 설명 없이 감정적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가 내린 답에 감탄과 영감을 받고 흔들리는 일상에 큰 위안이 된다. 홀로 걷는 줄 알았던 길옆에 샛길이 있고, 등불을 든 동행자의 희끄무레한 옆 얼굴이 언뜻언뜻 비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나보다 열 살 연상인 그 사람은 이렇게 치열하게 부딪치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그래서 생채기가 많지만 그래도 인간애와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그 용기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녀의 상냥한 시야는 내가 추구하는 길을 닮았다. 소통하고, 살피고, 공감하는, 그러면서도 강인한, 도톰한 솜옷 같은, 손난로와 닮은 그런 자아. 어떻게 저렇게 끝 모서리가 도톰한 온돌처럼 유연하고 원만할까, 싶다가도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찡하고 괜히 자랑스럽고 그렇다. 너무 좋은 면만 들여다보는 것도 때론 상대방에게 폭력이기에 다시 한 발자국 물러나 각자의 일상에 충실하지만 참 존재 자체로 든든한 언니다. 저 건너편의 우방, 아군처럼. 음, 다행히 우리 둘 다 그래도 머리가 굵어진 편이라 서로에게 과한 기대나 부담 없이 적당한 존중 관계를 유지 중이다. 뜻하지 않게 이어진 좋은 인연이 어찌나 감사한지. 앞으로도 잘 가꿔나갈 생각이다.


스쳐지나간 사람, 좋은 친구인 사람은 이 밖에도 많지만, 어떤 추억이 유독 자국이 남는 건 그 기억의 색깔이 내게 섞였기 때문일 것이다. 옷 소매에 묻은 물감처럼 번져서 얼룩덜룩 이곳 저곳에 묻어 나중에는 그게 무늬가 되었다. 새벽에 일어나 쭉 정리해본 인연 일대기를 들여다보니 이 관계들이 나를 키웠구나 싶어 웃음이 나왔다. 언젠가부터 당연히 내 것인 줄 알고 있던 것들이 이제보니 다 배운 것들이다. 벤치마킹도 있고 타산지석도 있고 병아리처럼 졸졸 쫓아가 따라한 것도 있다. 


동서남북 중 방향이 같건, 가다가 갈라지건, 정반대이건 상관없이, 내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준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행복하고 항상 건강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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