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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11화/25화)

11. 빈대떡

11. 빈대떡            


 경비실 근처 화단엔 벌레들이 많이 돌아다녔어요. 비가 오는 날엔 지렁이도 많이 나와, 빗자루로 쓸어 담을 정도였죠. 땅콩이는 제 근무시간 내내 경비실 근처에 있으면서, 지나가는 벌레들을 잡아먹고 있던 거였어요. 고양이들이야 원래 벌레를 보면 잘 잡고 먹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러고 있는 땅콩이를 보니 전보다 많이 야윈 것 같아 보이더군요. 먹을 걸 안 준지 상당한 시간이 지나기도 한 상태였어요. 그렇지 않아도 덩치가 작은 편이었는데 못 먹어서 몸까지 약해지면, 다른 길고양이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할 게 뻔했어요.     


 역시 저의 괜한 짓으로 작은 새나 쥐 정도는 잡아먹을 수 있었던 땅콩이의 사냥 능력을 퇴화시켜버린 것 같아 먹이를 챙겨준 게 회되더군요. 차라리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아기 고양이였을 때, 동물 보호 센터라도 알아보는 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먹을 것 만이라도 다시 줄까?' 하는 갈등이 시작되었어요.


 어느 날 건물 구석에서 전쟁 통에 겨우 쉴 곳을 찾은 피난민처럼 자고 있는 땅콩이를 보았어요. 한참 그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다가 가까이 다가가 봤죠. 제가 코앞에 있는데도 그대로 새록새록 숨 쉬는 작은 움직임만 반복하고 있더군요. 그런데 고양이가 인기척을 못 느낄 정도로 잠에 취해 있는 게 이상했어요. 강한 심리적 자극을 받은 사람에게 과수면이 생기거나, 인지 감각에 이상이 생기는 것처럼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에요.



 쉬는 날 마트에 가서 진열대에 가지런히 놓인 고양이용 사료 통조림들을 한참 보고 있었어요. 여태 찬찬히 뜯어본 적이 없던 한 통조림 겉면에 흰색 털에 초록색 눈을 가진 고양이가 그려져 있더군요. 왠지 좋은 사람을 만나 귀한 대접을 받으며 사는 고양이를 그린 것 같아 보였어요. 맛있는 먹이를 마음껏 먹으면서, 동물 병원에서 의료혜택도 누리며 사는 고양이를요. 고객 대기실에 걸려있는 "캣피의 생각"이라는 그림 속 고양이와도 많이 닮아있었어요. 건물 구석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던 땅콩이는 무슨 꿈을 꾸고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죠. 그저 예전처럼 제가 웃으면서 맛있는 통조림을 챙겨주면 허겁지겁 먹는 꿈을 꿀 것 같더군요. 그게 땅콩이가 꿈꿀 수 있는 행복의 전부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저 맛있는 먹이를 먹는 것이요.      

 

 땅콩이도 참 운이 없는 팔자이긴 했어요. 귀엽고, 똑똑하고, 애교도 많아서 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평생 사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녀석이었거든요. 땅콩이에게 잘못이 없다는 건, 저도 알고 있었어요. 단지 운 없게 저를 만난 것뿐이었지요. 세상에 잘 사는 사람, 집 있는 사람도 많은 데, 왜 하필 저였는지 모르겠더군요. 차라리 직원들이나 아니면 고급차를 타고 방문하는 고객들 중,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과 인연이 되었다면 저보다는 훨씬 나았을 테니까요.     


 먹을 건 다시 챙겨주기로 마음먹고 통조림 하나를 골랐어요. 막상 먹이를 다시 주기로 결정하고 나니, 작은 통조림이 담겨있는 장바구니에서 무언가 힘이 전달되는 것 같더군요. 잘 먹이면서 다시 땅콩이가 기운을 차릴 수 있을 정도의 도움만 주기로 했어요. 


 다음 출근길의 발걸음은 왠지 가벼웠어요. 땅콩이에게 빨리 통조림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고요. 경비실에 다시 들이지는 않고, 건물 구석이나 흡연구역에서 먹이를 주기로 했어요. CCTV가 찍히지 않는 사각지대에서요. 출근하면서 마주치는 직원들에게 인사도 힘차게 하고 기분 좋게 회사 입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직원들이 나오면서 도로변을 한 번씩 쳐다보더군요. 저도 직원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봤어요. 인도와 접한 도로변에 알록달록한 색을 띤 빈대떡 같은 게 보였어요. 찌그러진 피자 같기도 하고 김치가 들어간 해물파전 같기도 했어요.      


 그런데 가까이 갈수록 심장 아래쪽에서 차가운 느낌의 무언가가 올라오더군요. 입구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며 그 빈대떡 같은 형체를 힐끗 보았어요. 연붉은 반죽 사이로 눈에 익은 알록달록한 무늬의 털이 군데군데 박혀 있더군요. 더 자세히 살펴볼 것도,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죠. 차에 깔려 빈대떡이 된 땅콩이었으니까요. 또 제가 오는 시간대에 도로변까지 나와 있다가 지나가던 화물차에 깔린 모양이었어요. 땅콩이의 잔해를 보고 나서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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