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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복 Oct 30. 2022

소설 환취 (12화/25화)

12. 화물차

12. 화물차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어요. 갑자기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더군요. 경비실로 들어가 제가 먹을 야식들을 꺼내놓으면서 땅콩이에게 주려던 통조림은 가방에 그대로 두었어요. 더 이상 먹이를 주기 위해 꺼낼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땅콩이의 잔해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간단했어요.     


'내가 치워야 하나?'     


 회사 입구 앞이지만 엄연히 사유지가 아닌 공용도로 위에 죽어있으니, 제가 치울 책임은 없다는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도 만들어 보게 되더군요. 어쩌면 미화 여사님이 청소하시면서 치워주실지도 모르는 일이었고요. 출근 전까지 저와 땅콩이의 관계는 비우호적인 관계였어요. 그래서 편하게 마지막 관계의 연장선에서 끝난 걸로 여기기로 했어요. 이미 땅콩이는 세상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요. 도로변에 흉측하게 남은 잔해들만 빼고요. 


 경비실에 앉아 회사 입구를 보고 있자니, 도로변에 널브러져 있는 그 빈대떡 같은 형체가 계속 눈에 들어와서 신경이 쓰이더군요. 그리고 왠지 그것만 없어지면 완벽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요. 더군다나 직원들이 퇴근하면서 땅콩이 잔해에 한 번씩 눈길을 준 상황이라, 다음날 아침까지 그대로라면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걸 밤새도록 안치운 절 좋게 보지 않을 것도 문제였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미화 여사님이 회사밖에 있는 곳, 심지어 차가 다니는 시간대에 도로변에 있는 걸 치우시기는 어려울 듯 보였어요. 만약 커다란 차량이 밟고 지나간다면, 남은 잔해가 더 뭉개지면서 바퀴에 묻어 나갈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인근의 회사와 공장들도 대부분 문을 닫은 시간이라, 땅콩이를 밟고 지나갈만한 큰 차량이 나올만한 곳은 없었어요. 오직 한곳을 빼고는요. 


 일단 어두워지길 기다리기로 했어요. 밤엔 바로 옆 물류 회사에서 화물차들이 오가는 시간이 있었으니까요. 화물차가 물류 회사에서 나와 회사 입구를 가깝게 스쳐 지나가는 경로라, 충분히 땅콩이의 잔해를 밟고 지나갈 수 있을듯해 보였어요. 화물차의 큰 바퀴라면 남은 잔해를 더 짓이겨줄 수도 있고, 커다란 바퀴에 조금씩 묻어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았고요.     



 밤이 깊어지자 물류 회사 안으로 화물차들이 들어가는 게 보였어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화물차들이 짐을 싣고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죠. 이윽고 한 대씩 차례로 물류 회사에서 나가는 화물차들의 행렬이 시작되더군요. 월드컵에 진출한 국가대표의 축구 경기를 관전할 때처럼 긴장감이 느껴졌어요. 비록 몇 대의 차량이 간발의 차이로 그냥 지나가는 바람에 잠깐의 실망이 있었지만, 짧은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한 대가 밟고 지나가더군요. 수평으로 앞바퀴 한 번, 뒷바퀴 한 번 이렇게 두 번이나 밟으면서요. 땅바닥에 붙어있던 잔해의 일부가 가느다란 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는 게 보였어요. 순간 저도 모르게 "그렇지!"라며 감탄의 말이 나오더라고요. 회사 앞을 사납게 지나가는 화물차들의 소음이, 그날만큼은 구세주의 발걸음 소리 같았어요. 한 대씩 잔해를 밟고 지나갈 때마다, 전기가 오르듯 전율이 느껴지면서 저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 쥘 정도였으니까요. 


 눈에 힘을 주고 지나가는 화물차들의 바퀴를 보다가 경비실 유리창에 반투명으로 비친 제 모습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미소를 머금은 상태로 약간의 초조함과 기대감이 얼굴에 섞여 있는, 조금은 낯설고 어색하면서도 상황에는 딱 알맞은 자연스러운 표정이더군요. 커다란 화물차들이 줄줄이 땅콩이의 잔해를 짓밟으며 지나가고 있었지만, 깊은 새벽이 되면 그 차량들의 행렬도 멈추게 될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전에 다 치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나가는 화물차들의 바퀴를 보며 막연한 기도를 했어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종교의 신은 다 찾았죠. 그저 제 기도를 들어준다면, 어떤 신이라도 상관없었어요.   

 

 결국… 실패였어요. 절반 이상은 남은 것처럼 보였거든요. 남아있는 것도 잘게 다진 고기를 얇게 펴놓은 것처럼 오히려 이전보다 눈에 보이는 면적이 늘어난 데다, 주변에 여기저기 덩어리진 파편이 튀어 나간 상태였어요. 더 눈에 띄면서, 더 치우기 어렵게 되어버렸죠. 이제라도 직접 치워야 하는지 갈등이 시작되었어요.     


'비닐봉지에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버릴까?'


'쓰레받기에 모아서 화단에 묻어버릴까?'


'긴 빗자루로 도로 중앙까지 밀어버릴까?'

     

 하지만 전 근처에 가기가 너무 싫었어요. 비위가 상해서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고, 징그러워서 그런 것이었을 수도 있고, 이유는 여러 가지 만들 수 있지만, 진짜 이유를 하나만 대라면 전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을 거예요. 더 정확히는 "알고는 있지만 모르는 척하고 싶습니다."가 맞을 것 같군요. 전 땅콩이의 죽음과 관련이 없었으니까요.     


 한동안 가만히 앉은 상태로 낙담만 하고 있다가, 직접 처리하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였어요. 도로변에 고정한 제 시선의 가장자리에서, 느리게 다가오는 작은 그림자의 움직임이 느껴지더군요. 그림자의 주인을 확인하려고 천천히 경비실 옆 유리창을 향해 고개를 돌렸어요. 그건 고양이가 확실했어요. 그것도 작은 호랑이라도 해도 될 만큼 덩치가 큰 고양이요. 신께서 정말 저의 편을 들어주시는 것 같았어요. 다행히 고양이는 어디선가 나는 맛있는 냄새라도 맡았는지, 땅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 거리며 오고 있었어요. 덕분에 경비실 안에 있는 저의 존재를 들키지 않을 수 있었죠. 혹시나 방해가 되지 않게 서둘러 경비실의 전등을 끈 뒤, 자세를 낮추고 의자 뒤에 숨어서 조용히 고양이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당연히 전달이 안될 걸 알면서도 '킁킁' 대며 땅바닥을 훑고 있는 고양이를 향해, 텔레파시라도 보내듯 속으로 같은 말을 계속 외쳤어요.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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