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 소설 - 나방

나방이 나비를 스토킹 했습니다!

by 오문원

나방


"한방에 보내주마!"

스프레이형 살충제를 뿌리기 직전이었다.

"자! 잠깐만요! 뿌리지 마세욧! 아! 아! 안돼!"

2년여 만이었다. 돈벌레를 마지막으로 이런 일은 다신 없을 줄 알았다.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또 사연을 들어줘야 하나.... 나방에게 물었다.

"그래 넌 또 왜?"

"전 그저 나비님을 보려는 것뿐이었어요."

맞다. 집 앞 화단에 제비나비 한 마리가 며칠째 찾아와 보랏빛 방아꽃에 앉아 꿀을 빨아먹고 있었다. 손바닥 만한 크기에 꼬리 쪽으로 에메랄드색 반달무늬를 가진 나비였다. 나비가 출현했던 시기, 비슷한 크기에 흉측한 나방 한 마리가 나비 주위를 근거리에서 따라다녔다. 알을 잔뜩 밴 건지 배도 불룩한 데다 지저분한 황토색 날개엔 혐오스러운 흰색 눈알 문양이 있었다. 아름다운 나비를 위해 난 이 나방을 없애는 게 세상을 위해 옮은 일이라 생각했다. 이 나방은 그저 화사한 화단에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에 불과했다. 사연은 더 들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만큼 흉측했으니까. 난 바로 통보를 하고 보내버릴 작정이었다.

"알 밴 니 배마저 징그럽다. 잘 가라!"

바로 뿌렸어야 하는데... 또 나방의 마지막 외침이 문제였다.

"안 돼요! 저 처녀란 말이에욧!!!"

난 나방이 미친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 살충제를 분사하기 직전 난 스프레이 버튼에서 손가락을 뗄 수밖에 없었다. 정말 배가 뚱뚱했기 때문에 나방의 주장은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럼 왜 그리 배가 뚱뚱한데?"

"아! 제가 교미기라...."

"교미기엔 부풀어 오르나?"

"그건 저도 몰라요. 임신한 친구들은 알을 배서 부풀어 오르는데 전 살이 찐 건지 아니면...."

"아니면 뭐?"

"나비님 보면서 아이 갖고 싶다는 상상을 많이 했거든요. 속도 좀 이상하고...."

"하... 돌아버리겠네...."

나방이 상상임신을 은근히 주장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조금, 아주 조금이지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살처분 보다 평화적인 방법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난 언제나 이놈의 동정심이 인생의 걸림돌이었다. 나방에게 말했다.

"이봐 아가씨. 당신은 나방이야. 저건 나비고. 근데 쟤 수컷 맞아?"

"네 맞아요. 푸른색 무늬가 있으면 남자거든요. 여자는 붉은색이에요. 신기하죠?"

"그럼 그저 색깔 보고 수컷이라 따라다니는 거야?"

"아니요. 잘생겼잖아요."

"으!!!"

이 단순한 이유에 난 다시 살충제를 뿌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정신을 가출시킨 나방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답답하네 참... 같은 나방 수컷을 찾아야지 왜 나비를 따라다녀? 종이 다르잖아. 그리고 외적인 색깔도, 모양도."

"다르면 좋아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 아니 꼭 그렇진 않지...."

난 잠시 당황했다. 내가 마음속으로 깊이 연모하는 걸그룹 멤버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20대, 난 40대.... 자라온 시절도 그에따른 사고방식도 그녀와 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난 그녀를 좋아했다.

"그럼 좋아해도 되는 건가요?"

"좋아해도 되지만 뭐랄까... 지금은 계속 근처에 따라다니면서 나비를 귀찮게 하잖아. 나비는 너가 가까이 오면 좀 더 이동해서 꿀을 빨아먹어야 하고.... 나비는 너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멀찍이 방아꽃에 앉은 나비를 쳐다봤다.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꿀만 처먹고 있었다. 아니면 이 나방 아가씨와 달리 나와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었을 것이다. 벌레들 중에서도 가끔 특별한 개체만 대화가 가능했으니까. 내 말에 나방은 실망과 절망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그럼 안 되는 거로군요."

"인간사회에서는 그런 걸 스토킹이라고 해. 상대방의 거부의사에도 또는 싫어할 게 뻔한데도 사생활과 감정을 침해하는 거지."

"나비가 널 싫어할 건 너무 뻔하잖아. 쟨 저번에 보니까 다른 나비랑 교미도 하던데."

"네, 그건 알고 있어요. 그때는 자리를 피해 줬었어요."

"그럼 유부남이네. 그러면 더 안 되지. 아내 나비한테 더듬이 뜯기면 어쩌려고...."

"아내분들이 꽤 많으신 것 같았어요. 교미할 때마다 다른 나비들이었거든요."

"뭐야? 무슨 일부다처제인가? 아니면 제비 이름값하나? 그래도 어쨌든 결혼은 했을 테니 현재 임자는 있을 거 아니야."

"그렇군요. 전 나비님에게 그저 나쁜 존재일 뿐이었네요. 그럼 그냥 나비님 곁에서 떠나야 맞는 건가요?"

살충제를 뿌릴 수도 없었지만, 이렇게 실망만 안겨준 채 날려버리기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걸그룹 그녀를 좋아하는 방식을 나방에게 제안했다.

"방법이 한 가지 있어."

"네!? 어떤 거요!"

나비의 목소리가 갑자기 밝아졌다.

"팬이란 게 있거든."

"팬이요?"

"그래 동경하는 대상의 사생활이나 감정을 침해하지 않고 멀리서 지지하고 응원하는 거지. 그것도 사랑의 한 형태야."

"오~! 네! 네! 그거 좋아요! 그럼 전 팬 할께요. 어떻게 하는 건가요?"

"그래 잘 생각했어. 욕심을 걷어내면 팬으로서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보다 좀 더 멀리서 나비를 지켜보도록 해. 가까이 따라가고 그러지 말고. 그럼 나비도 널 싫어하진 않을 거야."

"네! 그럼 나비님도 볼 수 있고, 나비님이 절 싫어하시지도 않을 테고, 전 계속 좋아할 수 있어서 기뻐요!"

"캬... 너 다시 보니 그리 못난이는 아닌 것 같다."

"제가 나방세계에서는 한 미모 해요. 호호호."

"똑똑한 나방이었네. 그래 그렇게 해. 그럼 나도 네 팬심을 방해하지 않을께. 하하하."

모든 게 잘 해결된 것 같았다. 나방도 행복을 찾았고 난 살충제를 아꼈고....

그런데 나방이 갑자기 더듬이를 좌우로 움직이며 우물쭈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그런데... 저... 부탁이 있어요."

"응? 어떤 거?"

"전 나비님 보다 수명이 짧아요. 혹시 제가 먼저 죽게 되면 나비님을 볼 수 있게 그리고 방해 안되게 절 유리병에 넣어서 이 자리에 놓아주실 수 있나요? 여기가 나비님이 어디 계시든 가장 잘 보이는 곳인 것 같아요."

"뭐? 원래 수명이 짧은 거야?"

"원래 짧기도 하지만 전 야행성이라 낮에 자야 하는데 나비님 보러 잠을 못 자서 더 줄어들었을 것 같아요. 활동 에너지를 낮에 다 쏟아부었거든요. 인간으로 치면 매일 자야 할 시간에 달리기를 한 셈이에요. 그리고 배가...."

"배가 왜?"

"요즘 배가 계속 아파요."

아... 이런. 잠을 못 자 병에 걸린 게 분명했다. 게다가 방아잎은 허브향이 있어 나방의 몸과 마음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었다. 허브향은 곤충들의 기피제로 사용되기도 하니까.... 꽃에 앉은 나비를 잘 관찰하기 위해 나방은 그 아래쪽 잎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나방에게 너가 멍청했다고도, 미련했다고도 할 수는 없었다. 나방은 사랑의 방식이 여러 가지라는 걸 몰랐을 뿐....

"그래. 내 꼭 그렇게 해줄게."

"정말 고마워요."


그 뒤로 멀찍이 앉아 매일 나비를 지켜보던 나방은, 며칠 뒤 화단 풀숲에서 하늘을 보며 몸이 굳은 채로 누워있었다. 난 나방을 주워 유리병에 조심스레 넣은 다음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나비가 잘 보인다던 그 자리에 놓아두었다. 나방은 스토커였지만 내 말을 듣고 고민도 없이 팬으로 전향했다. 나방은 용기 있는 아가씨였다. 욕심을 버릴 수 있는 것도 용기니까....


약 2주 뒤, 나방이 담겨있던 병 위엔 날개를 펼친 채 살포시 병뚜껑을 감싸 안고 죽은 제비나비가 한 마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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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 글을 써도 내 글은 인기가 없어서

활동을 멈췄었다. 최근에 좀 자주 들르긴 하면서도

글은 적지 않았는데....

공인중개사 1차 시험 강의 보다가

끄적끄적 나방의 이야기를 새벽에 적었다.

모니터 앞으로 나방 한 마리가 지나갔기 때문이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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