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이 좋았다....
추석날이 되면 엄마는 나에게 보름달 보고 소원을 빌자고
하셨다. 매년 그러셨는데 난 그때마다 조금 귀찮았다.
어차피 미신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세월이 참 많이 지났다.
나도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었고
현재 엄마는 요양병원 중환자실에 계신다.
무더운 날씨에 혹여나 욕창이 생기시면 어쩌나
연휴기간 내내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옛날 귀찮아했던 그 추석 행사를 난 혼자 하러 나갔다.
이젠 엄마와 나란히 서서 달을 보며 소원을 빌 수 없다.
엄마와 연배와 비슷한 이웃집 아주머니가 계신다.
어느 날 집 앞에 화단을 정리하던 나에게 다가와
엄마는 어떠냐고 물으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옛날이 좋았다. 그쟈?"
집 근처 역 광장으로 갔다.
광장에서 달을 찍고 싶었다. 밤이라 인적은
거의 없었고, 가로등 불빛 아래 노숙인 몇 분이
모여 막걸리를 드시고 계셨다.
구름에 달이 가려졌지만 이것도 멋지다고
생각했다. 10년 전만 해도 이 광장엔
가로등이 이렇게 밝지도 않았고,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들도 없었다.
딱 10년 하고 2, 3개월쯤 된 것 같다.
그땐 한 여름이었으니까....
이때 굉장히 희한한 일이 있었는데
내가 밤에 광장을 지나다 어느 노숙인 할아버지에게
돈을 드린 적이 있다.
난 이걸 소재로 10년 뒤에 소설을 썼다.
(소설 광고 아님! 진짜 옛날 실화 이야기임.)
그리고 올해 책이란 걸 처음 내봤다.
단순히 돈을 드린 걸 소재로 쓴 게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나에게 준 쪽지 때문이었다.
그날 밤 그분이 더운데 옷도 두껍고 커다란
가방에 폐지 잔뜩 들고 다니셔서 안돼 보였다.
더군다나 지나가면서 빵집 진열대를 보길래
배가 고프실 것 같았다.
난 그분의 자존심을 지켜드리려 그에게
이렇게 불렀다. "스님!" 하의가 스님들이 입는
옷이었다.
그러면서 다짜고짜 "보시 좀 하려고요." 하면서
5천 원을 드렸다. 그런데 그분이 날 다시 부르더니
종이를 주셨다. 굉장히 목소리도 크시고 자세가
곧으셨다. 종이를 주기 전에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며 "명함 한 장 주쇼!"라고 했고 난 명함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백수였다..ㅋ
그러더니 그 폐지 가방을 마구 뒤적이시다 준
종이가 이거였다.
한자를 섞어 쓰신 거나 필체가 공부를
많이 하신 분 같았다.
이걸 난 웃으며 받고 서랍에 넣어두었다가
제 작년쯤 발견했다.
그리고 다시 읽어보다 많이 울었다.
어떤 상상 때문이었다.
마지막쯤에 달나라에서 날아가지 않는 방법이
적혀있었는데 어떤 슬픈 상상이 들어서였다.
이 엉뚱한 줄은 분명 누군가를 위해 쓴 것 같았다.
좋은 분이셨다. 남을 위해 쓴 글이었다.
당시에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쯤으로
보이셨으니 지금은 살아계시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혹여나 다시 만나게 되면 꼭 말해 주고 싶은 게
그거 무게로 계산하면 안 된다고 설명해주고 싶다.
그래도 그분의 예언은 맞았다.
나에게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으니까....
그날 내가 준 5천 원으로 밥은 사 드셨을지...
그땐 5천 원이면 국밥 먹을 수 있었다.
조금 전에 누나에게서 문자가 왔다.
간병사님 복귀하시는 날을 물어보았다.
현재 엄마를 간병하시던 분은 본래 간병사님
휴가로 오신 대근 간병사님이다.
엄마가 중환자라 다른 사람이 간병을 하면
탈이 생긴 경우가 많아서 걱정이다.
옛날 엄마랑 달 보며 소원을 빌 땐 주로
나를 위한 소원만 빌었다. 성의 없이...
오늘은 다른 소원을 빌었다....
연휴가 끝나면 엄마한테 별 탈이 없는지
복귀한 간병사님께 여쭤봐야 한다.
엄마는 이제 말씀도 못하신다....
옛날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