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명작가의 사망

전기 주전자를 사다.

by 오문원

5개월간의 공공근로를 지난달 끝내고 난 다시 백수 상태가 되었다.

공공근로는 긴 실업의 기간과 글을 써본다며 보낸 시간을 지나 겨우 얻은 일자리였다.

난 이전에 경비원 일을 오래 했고 또 직업을 구한다면 경비원 또는 미화 등의 일을 구해야 하는데....

대부분 용역업체 일이다.

그런데 현재 상황이 전일제 일자리나 교대 자리를 하기엔 부담이긴 했다.

일단 긴급하게 빠져도 같이 일하는 분들이나 직장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외래진료나 면회 등의 일정을 위해서였다.

공공근로는 그런 면에서 적합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오래간만에 일도 다니고, 일하시는 분들 그리고 자주 접하는 장애인 분들도 좋았다.

그러면서 정말 반은 장난으로 시작한 '초코'란 연재소설도 써보게 됐고....

그런데 공공근로가 끝나고 나서 일주일도 안되었는데, 빠르게 다시 백수 상태에 우울모드로 빠져들고 있었다.

'백수'라는 단어는 신기하게 타인이 나에게 사용하는 것보다,

내가 나 자신에게 사용할 때 커다란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물론 앞에 '돈 많은'이란 수식어가 붙으면 자부심에 빠지게 되지만....ㅎ

그래서 우울함이 시작되던 이때,

오늘 오전 기쁜 카톡을 하나 받았다.(난 물론 자고 있었다..ㅡ,.ㅡ;;)

그건 9월에 내가 출간한 소설의 정산금을 받은 것.

출판사 로맹 대표님과 카톡으로 대화하면서 난 이런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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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사실에 너무 기뻤다.

아! 지금 난 제정신으로 글을 쓰고 있다.

머릿속에 비상계엄이 터지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ㅋㅋ


난 아주 힘들었던 몇 년 전부터 번개탄을 두 장 머리맡에 놓고 자기 시작했다.

이게 꼭 극단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건 아니었고...

그냥 스위치였다.

언제든 이번 생을 끝낼 스위치가 나에게 있다는 안도감....

난 그런 식으로 날 위로했다.

그러다 브런치에서 알게 된 작가님이 글을 써보라고 간간히 추천의 말을 해주셨고,

인생을 되돌아본다는 의미로 혼자만의 소설을 썼다.

그런데 그 작가님이 또 그 시기쯤 출판사 로맹을 차리셔서 운영 중이셨고,

난 인생 처음으로 투고를 했다.

그래서 올해 9월 난 처음으로 소설책을 내봤다.

이미 소설가 지망생분들이 책을 낸 후 고전한 글들을 익히 많이 봤었기에

당연히 인기 없을 줄은 알고 있었다. 이건 각오한 부분이었다.

그래도 오늘 남들이 보기엔 큰 금액이 아닐지라도,

이젠 무명작가로 죽을 수 있는 그 돈이 들어와서 너무 기뻤다.

이제 난 백수로 죽지 못한다..ㅋㅋ

살아있는 동안 생각하는 모든 건 작품활동을 위한 구상으로 여기면 그만이다.

오늘 그 돈은 나에게 이런 가치였다.

넌 이제 정산금을 받은 정식 출간작가야.

그래서 그 기념으로 오래 쓸 수 있는 걸 하나 샀다.

전기 주전자! 무려 테팔!

이런 고급제품을 써보게 되다니..

그것도 책을 판매한 돈으로....

정산금의 많은 부분을 사용해서 샀다.

딱 오늘까지 행사가 19,900원!

매일 이 전기 주전자를 보면서 난 비록 무명작가지만

백수는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돼서 기쁘다.


난 글재주도 상상력도 부족하다.

이 두 가지는 내 생각엔 재능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부족한 이야기임에도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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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종이책도 팔긴 하지만, 내가 뭐 대단한 작가도 아니고....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손쉽게 만나보실 수 있다.

https://millie.page.link/DYXKa


이제 머리맡에 둔 번개탄은 생의 마감 스위치로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물론 따로 일자리를 또 찾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먼 훗날 다시 책을 팔아 돈이 생기면...

난 그 번개탄으로 고기나 구워 먹어야겠다. ㅋㅋ


그렇기에 나의 삶의 여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p.s 출판사 로맹의 대표이자 나의 사부님은 금액이 적다며 미안해하셨다.

내 이야기가 부족해서 안 팔린 것인데, 본인이 잘 못 팔아서 그렇게 된 것인 양..ㅋ

난 전혀 그런 생각 없는 데다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사부님 덕분에 이제 급사해도 '어느 무명작가의 사망'이 될 수 있어요! 음훼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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