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이 빠르게 지나다

2주 만에 쓰는 글

by 오문원

이번 연휴도 위기였다.

연휴 간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의 간병사분이 휴가를 길게

가셨기 때문이다.

간병사님이 휴가를 가시면 복귀날까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대근 간병사분이 오시지만 거의 수년간의 경험상 90% 확률로 탈이 났었다.

욕창이 발생한 다든가 혈뇨가 나온다든가 변비가 생긴다든가...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계시고 와상 환자시라 변비는 엄청 큰일 나는 일이다.

장폐색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연휴 동안 심리적인 지옥을 경험하기도 했다.

사실 내 현실을 돌아보면 제대로 살아가는 게 신기한 환경이기도 하다.

난 본래 굉장히 나약한 사람이고 지금도 나약하지만

과거 오랜 여관 장기방 생활이 생존력만큼은 조금 만들어 준 것 같다.

기억나는 일들이 참 많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을 의도치 않게 많이 관찰할 수 있었다.

여관이 너무 노후 돼 방을 같은 여관 안에서 5번 정도 옮긴 것 같다.

당시 거의 40년 된 건물이라 수도를 틀면 시뻘건 녹물이 나오기도 했다.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누군가가 "나 전과자인데!", "빵에서 좀 살다 왔다!" 는 둥,

이러면 "오~! 무서워!" 막 이러지만 여관에서 그랬다간 바로 칼 맞을 수 있다.

특히 내가 지낸 여관에는 그런 분들이 좀 많았다.

그래서 나도 잘 때는 과도를 곁에 두고 자는 게 마음이 편했다.

최첨단 여관이 아니라 방문이 가정집 방문 수준이어서

누가 따고 들어오면 바로....

하지만 그 시절엔 나도 까짓 거 뭐 어차피 망한 거.... 이 생각이라

급박한 상황이 닥치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긴 했다.

물론 지금은... 어머머 왜 이러세욧! 무서워욧! 이러겠지만...ㅎ

내 마지막 방 앞에 살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수배자였는데 멍청하게

주민센터에 지원금 신청하러 갔다가 잡혔고, 다른 한 명은 빈집 털이하러 다니다가

잡혔다.

물론 정상적이고 성실한 분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멀리 타지에서 공사 뛰러 오신 분들이라던가.

중국에서 돈 벌러 왔는데 값싼 방을 찾는 조선족분들이 있었다.

내가 살던 여관에서는 중동 쪽 사람은 안 받았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냄새 차별이었다.

그분들이 살고 떠난 방은 냄새가 너무 나서 벽지를 다 갈아야 할 정도라고 여관 사장님이

그러셨다. 그게 향신료가 섞인 음식 때문인지 아니면 체취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기초생활 수급자분들도 몇 계셨다.

그분들에게는 사회복지단체나 종교단체에서 도시락을 주기적으로

배달해 주셨다. 가끔 교회에서 간식을 문고리에 걸어두기도 했고....

나도 가끔 방문을 나설 때 문고리에 걸려있던 귤 봉지를 보고 살며시 입꼬리를 올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엔 진짜로 도시락 받는 기초생활 수급자 분들이 부러웠다.

난 그때 편의점 도시락, 특히 돈까스 도시락을 많이 사 먹어서....

내가 행색도 초라한 데다가 가끔 경비원 옷을 입고 편의점에 들러서 그런지

편의점 여사장님이 폐기 식품을 자주 주셨다. 폐기 식품이라지만 거의 시간만 조금

지난 거라 괜찮았다. 그 편의점 여사장님 좋은 분이셨다.

어느 날 야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해서 편의점에 들렀는데, 중늙은이 남자가

여사장님한테 뭐가 안된다고 지랄지랄을 하고 있었다.

한 5분이 넘어설 때쯤 안 되겠다 싶어 난 그냥 근처에 서 있었다.

혹시나 몰라서....

그때쯤 사장님도 전화기를 수화기를 들어놓아서 몇 분 뒤 경찰이 왔다.

편의점 전화기 수화기 들어놓으면 경찰이 온다.

작년인가 길에서 그 사장님을 우연히 마주쳐 인사를 드렸다.

사실 내 이름도 모르고 얼굴만 아시는데 반가워하셨고 나도 반가웠다.

사장님께 제가 다른 데 산다고 말씀드리면서 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여기까지 쓰다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 말이 길어졌나 까먹어서 다시

위에 갔다가 내려왔다.. 풉~!


이번 연휴 지난주 금요일에 간병사님이 휴가에서 복귀하셨다.

다행히 대근 간병사님이 어느 정도 해주셔서 욕창도 혈뇨도 변비도

없었는데, 손가락 사이에 살이 벗겨지셨다.

편마비 상태라 손가락이 거의 붙어있다 시피하시다.

그래서 간병사님이 손가락 사이에 거즈를 끼워놓으셨다.

또 어딘가 이상이 생겨 마음이 아팠지만,

그래도 이번에 욕창이 새로 안 생겨 마음이 놓였다.

지난주 토요일 어머니 면회를 하고 그날 밤 난 기절하듯이 잤다.

아버지께도 다녀왔는데 어머니 사진을 납골함 앞에 비추며

보여드렸다.


그렇게 놀면서 보낸 건 아니지만 이제 다시 자격증 공부를 해야겠다.

상반기 떨어진 공공근로는 하반기에 다시 신청해 볼 예정이다.

그나마 공공근로 하면서 돈 조금이라도 버는 게 생활에 좋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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