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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풍 Jul 02. 2022

안녕하세요? 행성 L이에요.

5. 식사 대용 막걸리

 여관 1층에는 술병만 따로 모아두는 곳이 있었어요. 맥주병이나 소주병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막걸리 빈병도 많이 나왔어요. 연세 으신 분들이 전통주 같은 걸 좋아하시나 보다 생각했었죠.


  어느 날 아침에 야간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데 여관이 밀집한 골목 모퉁이에서 어떤 아저씨가 막걸리를 마시고 계시더라고요. 저와는 다른 여관에 사는 분이지만 자주 같은 자리에 앉아계셔서 몇 년째 얼굴은 익었던 분이셨어요. 저도 그렇지만 여관에 오래 지내고 그 동네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그 동네 주민처럼 인식되기도 해요. 전 동네 어르신이 부끄럼 많이 타는 총각이라고 새색시 같다고 농담도 하시더라고요. 동네 대동제 굿판에 참석해서 국수 같은 것을 얻어먹기도 했어요. 그분도 거의 동네분들과 안면이 있으셔서 그런지 아침에 바깥을 나오신 동네 할머니께서 그분께 아침은 먹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랬더니 그 아저씨께서 막걸리 병을 들어 보이시면서 '이거면 아침이죠 뭐.'라고 하시면서 막걸리는 안주 없이 먹어도 속 안 쓰리고 든든해서 밥 된다고 말하시길래 저도 막걸리에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아침에 퇴근해서는 금방 잠에 들기가 힘들어서, 저도 아주 조금씩 술을 먹곤 했거든요. 소주처럼 독하지도 않고, 맥주 같이 마신 뒤 자다가 화장실 갈 일도 적고 그리고 무엇보다 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길래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었죠. 정말 속에 부담도 적고, 한 병이면 막걸리 이틀이나 삼일 먹을 수 있어서 만족하게 되더라고요.


 막걸리는 부침개 하고 먹으면 맛있다고 하지만 부침개를 시장에서 사려면 시장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전 편의점의 조각피자를 부침개 대용으로 막걸리와 같이 먹었어요. 그런데 맛의 조화가 정말 일품이었어요.

 

 편의점 조각피자 하나와 막걸리 한잔의 값은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 값보다 저렴해서 돈도 절약되고, 맛도 좋고, 잠도 잘 와서 완벽한 퇴근 후 저만의 만찬 메뉴가 되었죠. 지금은 몸이 안 좋아 술을 안 마시지만 글을 적다 보니 예전 생각이 나면서 한번 저렇게 먹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제가 사는 지역 전철역 광장 앞에는 노숙인 분들이 많이 계시곤 해요. 그분들이 주로 드시는 술이 막걸리인데 그분들도 같은 이유로 막걸리를 드시는 것이라 생각해요. 값도 다른 술보단 안 비싸고, 식사 대신 마시면 든든하니까요. 막걸리가 비록 술이지만, 라면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을 구한 식량이기도 한 것 같아요.


 요즘은 고급화된 고가의 막걸리나오지만, 전 막걸리는 앞으로도 계속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사람들을 위해 맥주나 소주보다 저렴하고 양 많은 술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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