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디지털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 콘텐츠 리터러시 등 '리터러시'라는 말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리터러시'라는 말은 원래 읽고 이해하는 힘, ‘문해력’을 뜻한다. 그런데 온라인에 정보가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이 말은 '리터러시'로 호출됐다. 정보는 많아졌는데, 무엇을 믿어야 할지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우리는 '읽는 힘'을 '리터러시'라는 단어로 다시 말하기 시작한 것 같다.
최근에는 'AI 리터러시'라는 표현이 자주 보인다. AI를 잘 이해하고 사용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단순히 기능을 다루는 능력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교육과 정책 영역에서는 'AI 리터러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힘, 윤리적으로 판단하는 태도, AI의 한계를 인식하는 감각까지 포함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층위를 더 보태고 싶다. 바로 ‘조립하고 잇는 능력’이다.
이제 지식은 한 곳에 머물지 않는다. 책 속에, 웹페이지에, 혹은 AI의 연산 속에 파편화되어 흩어져 있다. 진정한 AI 리터러시를 가진 사람은 이 파편들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AI라는 강력한 접착제를 활용해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유기적으로 잇고, 그 안에서 새로운 맥락을 편집해 낸다.
내가 카메라로 책을 찍어 시트에 저장하고, 이를 다시 AI와 대화하며 나만의 연구 카드로 만드는 과정은 단순히 기술을 잘 다루기 위함이 아니다. 기술의 알고리즘에 내 사고를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계한 시스템 안에서 AI를 '협력적 주체'로 길들이는 실천이다. AI가 주는 매끄러운 답변에 안주하지 않고, 그 답변이 내 삶의 맥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집요하게 묻는 과정 자체가 고도의 문해력인 셈이다.
결국 AI 리터러시의 종착역은 '인간 리터러시'로 향한다. AI가 지능의 노동을 대신해 줄 때, 역설적으로 우리는 '나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 '이 연결은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질문을 더 선명하게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기술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화려한 프롬프트 기술이 아니다. 쏟아지는 지능의 파도 위에서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시선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기술을 도구 삼아 내 세계를 더 넓게 확장하는 '이음의 감각'. 그것이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진짜 문해력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