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은 가볍게, 판단은 단단하게

by 아이엠

AI는 늘 친절하다. A안을 주면 B안을 보여주고, B안을 고르면 C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많은 가능성을 건넨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직접 검색하며 작업할 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정보를 찾느라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선택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속도는 빨라졌는데 결정은 느려졌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를 활용해 빠르게 일하려면 결국 빠른 판단력이 필요하겠다고.


그때 떠오른 말이 있다. “AI를 사용하는 건 CEO가 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AI는 실행을 대신한다. 하지만 방향은 대신 정하지 않는다. 무엇을 할지, 어디에 자원을 쓸지, 어떤 선택을 포기할지 결정하는 사람은 결국 사용자다. 그 자리가 CEO의 자리와 닮아 있다.


유능한 CEO는 모든 정보를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결정이 빠른 것이 아니다. 이미 무엇을 우선에 둘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빠르다. 그에게 판단은 “무엇이 맞는가”를 찾는 과정이 아니라 “내 기준에 맞는가”를 확인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결정이 짧다. 그리고 그 기준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작은 선택을 반복하면서 “이건 아니다”, “이건 맞다” 스스로 확인해 온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다.


판단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결정의 축적에서 단단해진다. 많이 겪어본 사람은 패턴을 빨리 읽는다. 많이 결정해 본 사람은 우선순위를 빨리 정한다. 그래서 AI를 잘 쓰는 능력은 결국 CEO와 같은 판단을 자주 연습해 본 사람에게서 나온다.


하지만 경험만으로는 부족하다. 혼자 겪은 경험은 때로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한 방향으로만 굳히기도 한다. 판단은 많이 겪는 것만으로 넓어지지 않는다. 다르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 때 넓어진다. 그래서 간접 경험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선택은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 미리 들여다보는 일. 그 과정에서 내 기준은 조금씩 조정된다. 확신은 더 단단해지거나, 아니면 과감히 수정된다. 그래서 독서가 필요하다. 책은 타인의 시행착오를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책만이 전부는 아니다. 좋은 강연, 잘 정리된 영상, 깊이 있는 대화 역시 판단의 지형을 넓혀준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관점을 늘리는 일이다.


AI가 일을 대신해 줄수록 인간은 더 자주 선택해야 한다. 실행은 가벼워졌지만 판단은 더 무거워졌다. 어쩌면 우리는 AI라는 조직을 거느린 작은 CEO가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격은 지식이 아니라 반복된 결단에서 만들어진다. 결국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빠른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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