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AI가 대신 일하는 시대가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문득 내가 일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상상해 봤다.
사람마다 하나 이상의 AI를 가지고 있다.
그 AI가 대신 출근한다.
기획서를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계약을 따오고, 고객과 협상한다.
월말이 되면 계좌로 수익이 들어온다.
상상 속에서 나는 일하지 않는다. 내 AI가 일한다. 처음에는 꽤 달콤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출근길 지하철도 없고, 마감에 쫓길 일도 없다. 회의 대신 산책을 하고, 보고서 대신 책을 읽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에는 무엇이 ‘유능함’일까?
지금은 일을 잘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다. 속도가 빠르고, 결과를 만들고, 책임을 지는 사람. 그런데 AI가 그 일을 대신한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평가받게 될까?
어쩌면 사람들은 더 좋은 AI를 가지려고 할지도 모른다. 더 똑똑한 모델, 더 빠른 처리 속도, 더 정교한 분석 능력. 성능이 좋은 AI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
더 유능한 AI를 얻기 위해 나는 또 다른 공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더 비싼 구독료를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남들보다 먼저 업데이트 소식을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결국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해야 한다. 다만 내가 직접 일하는 대신, 내 대신 일할 존재를 준비하고 관리하는 일로 바뀔 뿐이다.
사람이 일하지 않는 시대라고 했지만, 어쩌면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계속 바쁠지도 모른다. 일 대신 선택을 하고, 노동 대신 비교를 하고, 경쟁 대신 업그레이드를 한다.
물론 이 모든 건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AI가 어디까지 대신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생각보다 느리게 올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해보는 것도 지금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사람이 일하지 않는 시대를 그려보다 보면 이상하게도 한 가지 장면이 반복된다. 나는 쉬고 있는데, 마음은 쉬고 있지 않다. 더 좋은 AI는 무엇인지, 지금 준비해야 할 건 없는지, 남들보다 뒤처지지는 않을지 계속 계산하고 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미래를 상상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어쩌면 그 상상 속에서 내가 발견한 건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불안이었는지도 모른다.
본격적인 AI 시대가 오기 전, 이런 상상을 가볍게 해 보는 일. 그 안에서 나는 미래보다 먼저 지금의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