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개의 문장 영상을 만들며 알게 된 것

by 아이엠

외국어 교육 콘텐츠를 만들면서 의외의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 콘텐츠는 설명이 많은 강의가 아니라 문장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영상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운전할 때, 외출 준비를 할 때, 집안일을 할 때 들으면 유용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공부 시간을 따로 만들지 않는 대신 틀어두는 학습을 선택한다. 그래서 외국어 콘텐츠를 만들 때면 문장 반복 청취 영상을 꾸준히 제작했다. 문장을 보여주고 음성을 들려주고 같은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하는 구조다.


문제는 제작 과정이었다. 문장 하나를 넣고 PPT로 슬라이드를 만들고 음성을 녹음하고 이미지와 오디오의 싱크를 맞춘다. 어떤 때는 PPT를 자동 재생시켜 화면을 캡처했고 어떤 때는 이미지와 오디오를 따로 편집했다. 방법은 여러 가지였지만 결국 구조는 같았다. 문장 하나, 음성 하나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는 슬라이드를 넘기고 녹음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편집 프로그램 앞에서 작업을 반복해야 했다. 정성이 들어간 작업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비효율이기도 했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AI 음성을 사용하고 레이아웃과 디자인 원칙을 한 번만 정해 두면 나머지는 거의 자동으로 돌아간다. 이 방식으로 나는 913개의 문장에 대한 영상 콘텐츠를 만들었다. 예전 방식이었다면 아마 몇 달이 걸렸을 작업이다. 지금은 레이아웃만 정리되어 있다면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속도가 빨라진 것만 아니라 제작자의 에너지가 단순 반복 노동에서 콘텐츠 설계로 이동했다.

코딩으로 영상이 생성되고 있는 화면


이 작업을 하면서 한 가지를 분명하게 느꼈다. 교육 콘텐츠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콘텐츠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재현 가능성이다. 사람의 감각을 시스템으로 옮기는 것. 그래서 무엇을 넣어도 누가 실행해도 같은 방식으로 결과가 나온다. 예전에는 내가 해야만 결과가 나왔다. 지금은 내가 아니어도 된다. 이것이 재현 가능성이다.


둘째는 지속 가능성이다. 오래 버티는 의지가 아니다. 같은 방식으로 콘텐츠를 계속 만들어 낼 수 있는 구조다. 제작자가 피곤한 날에도 시간이 없는 날에도 콘텐츠 생산이 멈추지 않는 상태. 시스템이 노동을 대신할 때 제작자의 에너지는 비로소 더 중요한 곳으로 흐른다. 더 좋은 문장을 고르고 더 나은 학습 구조를 고민하고 학습자에게 필요한 경험을 설계하는 일이다.


과거의 수작업은 외국어 문장이 반복되는 구조와 학습자의 실제 사용 방식을 몸으로 익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제 AI라는 도구 덕분에 그 감각을 시스템으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하나를 잘 만드는 사람이 필요했다. 지금은 멈추지 않는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좋은 콘텐츠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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