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화에 관한 글을 쓰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AI 시대에 고맥락 문화의 사람은 불리할까, 아니면 오히려 유리할까.
우리는 오래도록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문화를 살아왔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다.' 이 표현에는 한국 사회가 일을 바라보는 방식이 그대로 담겨 있다. 말보다 분위기, 설명보다 눈치, 문장보다 맥락.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분류에 따르면 한국은 전형적인 고맥락(High-context) 문화에 속한다. 많은 정보가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상황 속에 담긴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하지만 AI와 일을 시작하는 순간 이 익숙한 방식은 곧바로 벽이 된다. AI는 지독할 정도로 저맥락(Low-context)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실무에서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지난번 보고서 스타일로 깔끔하게 정리해 줘."
사람끼리라면 이 말로 충분하다. 지난 프로젝트의 분위기, 보고서의 구조, 팀장이 좋아하는 형식.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AI에게 이 문장은 거의 아무 의미가 없다. AI는 우리의 '지난번'을 모른다. 그래서 같은 요청도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A사 프로젝트 보고서 형식을 적용해 정리해 줘. 폰트 크기 11pt, 개조식 구성, 핵심 요약은 문서 상단에 3줄로 정리."
이 순간 요청은 훨씬 길어진다. 하지만 동시에 훨씬 명확해진다.
AI 협업의 첫 번째 장벽은 기술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축약된 언어로 일해왔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데이터를 다룰 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숙련된 실무자는 수백 줄의 데이터를 훑으면서도 "뭔가 이상하다"는 감을 잡아낸다. 수치가 말해주기 전에 패턴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 감각은 오랜 경험이 쌓인 고맥락적 직관이다.
하지만 그 직관을 AI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 "느낌상 3분기가 이상해"라는 말로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AI가 움직이려면 기준이 있어야 하고, 기준은 숫자여야 하고, 숫자는 구조 안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데이터 시각화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머릿속에 있는 고맥락적 직관을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저맥락 신호로 번역하는 과정이다.
결국 승부처는 맥락 설계에 있다. AI는 주어진 명령을 수행하는 데는 탁월하다. 하지만 "이 작업이 왜 필요한가", "이 결과가 어떤 흐름 속에 놓이는가" — 이런 질문에는 스스로 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판을 짜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전체 흐름을 읽고,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비즈니스의 맥락을 정리하는 일. 이 단계에서는 오히려 우리의 고맥락적 직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판 위에서 AI가 움직일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저맥락 언어로 풀어내는 것. 그것이 AX 시대의 실무 설계다.
그렇다면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고맥락 문화의 사람은 AI 시대에 불리할까.
아니다. 오히려 반대일 수 있다. 저맥락 문화의 사람은 명확하게 말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고맥락 문화의 사람은 전체 판을 읽는 데 익숙하다. AI 시대에 진짜 필요한 능력은 프롬프트를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있는 고맥락적 직관을 오차 없이 저맥락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다.
AI는 눈치를 보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말로 설계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된다. 하지만 설계할 생각 자체를 가진 사람 — 맥락을 읽고 판을 짜는 사람 — 은 처음부터 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