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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소비 일지'를 써 볼까요?


우리 집에는 노트북이 모두 5대가 있다. 아들과 딸의 맥북, 맥북 에어가 있고 내게는 맥북, 맥북 프로, 서피스 프로가 있다. 와이프 빼고 아이패드도 한 대씩 있으니까 스마트폰을 제외하고도 모두 8대의 스마트 기기가 있는 셈이다. 과연 이게 다 필요한 것들일까?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특별히 IT 기기에 진심이다. 이유는 잘 모른다. 그저 다양한 스마트폰과 노트북, 패드류를 사고 만질 때마다 쾌감을 느낀다. 키보드와 디스플레이, 스펙별 미세한 차이에 민감하다. 그 고민을 무언가를 '생산'하는데 써야 할 텐데, 전쟁은 나가지 않고 칼만 만지고 있는 셈이다. 이거 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브런치북 수상작들을 읽다가 '소비단식'이란 제목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나같이 비슷한 감정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음식을 조절하듯이 소비를 조절해야 하는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런데 신기하지 않은가. 이 풍요한 세상에서 우리는 '허기'를 느낀다. 많은 소비가 우울과 관련 있다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뭔가 허전할 때, 우울할 때 소비는 일시적인 만족을 준다. 오늘 밤에 주문하면 내일 새벽까지 나는 행복하다. 새벽에 눈을 부비며 일어나 현관 앞 싸늘한 공기와 함께 찾아오는 택배 박스는 얼마나 행복한 기분을 주는가. 비록 그 만족이 하루를 채 가지 못하는 찰나에 가까운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함께 써야 할 일지는 가계부가 아니라 '감정'의 기록이어야 할지 모른다. 새 기계를 '언박싱'하는 그 순간의 만족이 아닌, 조금 더 오래가는 감정의 가계부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어쩌면 소비는 줄이면서도 행복의 크기를 늘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닐지.


소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기타리스트가 세상의 모든 기타를 수집해 놓고 있다면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명예의 전당이자 박물관에 가깝다. 한 마디로 멋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당근에 내다 팔 물건을 파는 소비라면 그것은 내 감정 상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에 가깝다. 우리에겐 더 지혜롭고 지속 가능한 소비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제 나만의 욕망의 지도를 그려보자.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그 행복은 유효 기간이 어느 정도 되는지, 그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인지도 함께 체크해보자. 가계부가 아닌 감정의 소비 일지를 써보자. 소비의 '단식'을 너머 욕망의 다이어트를 시도해보자. 어쩌면 또 하나의 멋진 브런치북 하나가 나올지도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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