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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2021 엘리트 드래곤플라이 G2 13.3

감정의 소비 일지 - 그 첫 번째 이야기

앞선 글에서 얘기했듯이 내게는 세 대의 노트북이 있다. 휴대하기에 최고의 무게를 가진 뉴 맥북, 요즘은 새로운 M1칩이 나와 오징어가 된 맥북 프로, 윈도우즈가 그리울 때를 대비해 간지만 보고 산 서피스 프로 6가 있다. 사실 아이들에게 물려준 노트북들 역시 내가 쓰다가 싫증이 나서 물려준 것들이다. 당근을 통해 되판 노트북들도 수두룩하다. 문제는 이게 나의 일인 글쓰기나 컨설팅에 크게 필요한 것들이 아니라는데 있다. 윈도우 써핑과 워드 정도면 충분한데도 나는 자꾸만 새 노트북, 아이패드, 스마트폰, 키보드에 욕심을 낸다.


어제는 HP에서 나온 트북인 '드라곤플라이 G2'를 충동적으로 지르고 말았다. 900그람 대의 이 노트북은 이른바 2in1 노트북이다. 노트북과 태블릿으로 동시에 사용이 가능하다. 비즈니스맨을 위해 특화된 스펙이 많은데, 예를 들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측면에서 볼 수 없도록 시야각을 줄여준다. 전면 카메라도 가릴 수 있고, 무엇보다 푸른 빛 도는 수트를 입은 듯 간지가 흐르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그 어느 노트북과도 다른 세련된 디자인에 매혹돼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어제는 참지 못하고 리퍼인데다 중고인 노트북을 150만 원을 주고 지르고 말았다.


드디어 쿠팡맨이 15시간이나 일찍 물건을 배달해 주었다. 나는 이런 제품을 살 때 로켓 배송이 아니면 직접 현장에 가서 직접 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첫 인상은 매우 만족이었다. 프리 도스 제품인데도 큰 어려움 없이 윈도우 10을 설치하고 바로 11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 키감도 대만족이고 얇은 베젤과 지문 인식 같은 디테일한 기능들이 마음을 끈다. 언제고 반품이 가능한 쿠팡의 서비스를 믿고 주문을 했는데 왠지 반품하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가까운 카페에 들고가 작업 하나도 마무리 했다. 하지만 이런 밀월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집에 가서 습관처럼 맥북 프로를 켰다. 뭔가 이상했다. 평소보다 화면이 몇 배는 더 밝아보였다. 찜찜한 기분으로 새로 산 노트북을 열어 보았다. 화면 밝기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다시 한 번 스펙을 살폈다. 새로 산 노트북의 디스플레이 밝기는 400니트. 내가 알고 있는 이 모델의 최대 밝기는 1000니트였다. (참고로 맥북 프로의 밝기는 500니트이다) 아차 싶은 생각에 상세 페이지를 다시 살폈다. '드라곤 플라이 G2' 다음에 나오는 모델명이 미세하게 달랐다. HP가 속였다기 보다는 내가 자발적으로 속은 것에 가까웠다. 실망감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나는 미련없이 반품 버튼을 누리고 정성스럽게 재포장을 했다.


불과 100니트의 차이다. 하지만 두 화면을 비교하고 보면 나같은 사람에겐 그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수십 개의 키보드를 산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문제는 이것이 글을 쓰는데, 영화를 보는데, 웹 서핑을 하는데 하등 불편이 없다는데 있다. 두 대의 기계를 직접 비교하지 않으면 실제로 체감하는 것도 어렵다. 하지만 모르면 모를까, 알고 나면 두고 두고 미련과 아쉬움이 남는다. 마치 120메가헤르쯔의 스마트폰을 쓰다가 60헤르쯔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무관심한 사람에겐 어이 없는 이유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이유로 스마트폰을 바꾼다.


"노트북은 필요해서 사지만, 아이패드는 갖고 싶어서 사는 거에요."


어느 날 유튜브에서 이런 말을 듣고 속으로 무릎을 쳤다. 정말로 맞는 말이다. 이 시대의 우리는 필요만으로 물건을 사지 않는다. '욕구' 혹은 '감정' 때문에 소비를 한다. 가치 소비, 경험 소비란 말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커피를 마셔도 어떤 카페에서 마시는가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내가 신는 신발이나 가방이 지구 환경을 지킬 수 있다면 기꺼이 더 비싼 소비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니 나의 부질없는 노트북에 대한 집착도 그런 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나는 글을 쓸 수 있고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기계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카페에 가서 자랑하고 싶은, 디스플레이와 키보드로 이어지는 섬세한 마감이 주는 심리적 만족감에 끌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환상이 깨어졌을 때, 아무런 미련 없이 노트북을 버렸던? 것이다.


분명 이건 건강한 감정이 아니다. 노트북은 생산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모셔 놓고 감상하는 미술품이 아니다. 하지만 나도 할 말은 있다. 이발사가 비싼 가위를 사는걸 낭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목수가 벽 하나 가득 각종 도구들을 걸어두는게 허세라고 할 수 있을까? 기분과 용도에 따라 네다섯 대의 노트북을 준비해놓고 골라쓰는게 그렇게 죄책감을 느낄 일인가.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 찰나의 만족이 사라지면 금새 다른 제품을 검색하고 있는 나 자신을. 하나의 도구에 애정을 가지고 오래도록 쓸 수 있다면 그건 낭비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나처럼 한 나절을 가지 못하는 즉흥적인 욕구라면 그건 소위 지름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결국 문제는 '지속가능성'에 있다.


나는 좋은 노트북으로 글을 쓴 권리가 있다. 형편과 여유가 된다면 몇 대의 노트북을 동시에 쓴다고 해서 낭비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마치 OS가 다른 각양 각색의 컴퓨터를 방 한 가득 들여 놓았던 이어령 박사님처럼, 디터람스의 디자인이 좋아 아예 전시관을 만든 '4560디자인하우스'의 박종만 대표처럼. 하지만 나는 아직 그 두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지름의 이유를 말하긴엔 턱없이 내공이 부족한 사람이다. 가벼운 욕심과 거룩한 욕망의 차이는 생각보다 클지 모른다. 더 좋은 영감을 주는, 더 높은 생산성을 허락하는 도구를 찾는 일은 죄가 아니다. 하지만 그 도구들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일지 모른다.


그러니 새 노트북을 향한 내 욕망을 찬찬히 살펴 보자. 그 선택이 나의 글과 영감어린 생각에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냉정하게 판단하자. 디스플레이의 밝기와 키보드의 키감이 좋은 글을 쓰는데, 멋진 네이밍과 카피를 뽑는데 어떤 역할을 할지 엄격하게 따져보자. 그리고 그렇게 선택한 기계를 오랫동안 쓸 수 없다면 함부로 지르지 말자. 그리고 이 지혜를 일과 사람에게도 적용해 보자. 오래도록 질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 필요와 스펙을 넘어 존재 그 자체로 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고 또 물어보자.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도구와 일, 사람에 집중하자. 그것이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지름신이 내게 준 딱 하나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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