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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난 잘하는게 뭐지?

이제 중3인 딸이 어느 날 평소답지 않은 어투로 진지하게 내게 물었다.


"아빠, 난 잘하는게 뭐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우'라는 구체적인 꿈이 있었던 딸이었다. 그래서 연기학원도 다녔다. 하지만 막상 다녀보니 정말로 뛰어난 친구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좌절을 경험한 딸이었다. 그런 경험을 알고 있기에 그냥 웃어넘기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물었다.


"우리 딸은 뭐 할 때 가장 행복해?"

"모르겠어."

"그럼 뭐 할 때 가장 몰입이 잘 되는 것 같애?"

"음... 그림 그릴 때?"

"그럼 미술 학원에 다녀볼래?"

"그건 싫어."

"왜?"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서 뭔가를 한다는게 부담스러워."

"그럼 혼자서 그림 배우는 방법을 찾아볼까?"



짧은 대화였지만 나와 딸은 이렇게 '좋아하는 것'의 정의를 차츰 구체화시켜가기 시작했다. 중3인 딸에게 구체적인 직업은 너무 먼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좋아하는 것,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도 너무 막연하고 추상적인 질문 같았다. 하지만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분 좋게 몰두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니 그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그림이었다. 그렇다고 미술학원에 다니는 친구들처럼 배우는 것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때 문득 대기업을 다니다가 그림을 배운 정진호씨가 생각이 났다. 그가 운영하는 행복화실, 그가 쓴 책 '행복화실'이 떠올랐다. 나는 딸에게 이야기했다.


"그림 그리는 직업을 가지라는 얘기가 아니야. 니가 뭘 할 때 조금 더 쉽게 몰입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는거야. 왜냐하면 뭔가에 몰입하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거든. 그게 뭔지 알아내면 직업은 그 다음에 찾아도 절대로 늦지 않아. 하지만 그런 순간을 찾아내려면 일단 해봐야 돼.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리고 나는 정진호씨 이야기를 했다. 대기업 프로그래머로 일하다가 결국은 그림 그리는 일로 회사까지 만든 그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가 쓴 책, 그가 운영하는 그림 그리기 프로그램도 소개해주었다.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때 다른 걸 찾아보자고 말해주었다. 딸이 조금은 안도한 눈빛으로 자기 방으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정진호씨가 쓴 책 '행복화실'을 주문했다. 그리고 어느 새 '자기다운' 삶을 고민하는 딸이 대견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가 마흔이 넘어서야 했던 고민을 벌서 시작한 중3짜리 딸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이 긴 여행을 함께 해주어야겠다는 작은 의무감도 생겼다. 그건 행복한 의무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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