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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숲에 두 갈래로 갈라진 길이 있었다...

<황홀한 글감옥, 4주간의 글쓰기 #03.>

운전을 배우기로 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 면허가 없다. 구차하게 이유를 대고 싶진 않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면허를 따지 못했고, 아내가 20년 세월 우리 가족의 발이 되어 주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와이프가 운전을 매우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면허를 딴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스타렉스를 대절해 동네 아줌마들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강원도에 다녀왔으니까.


아무튼 나는 면허 없이 나머지 생을 살게 될 줄 알았다. 딱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이 나이에 굳이...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연초에 어마어마하게 큰 일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 번 뿐인 인생이다. 무엇이 두려우랴. 예전 같으면 그 좁은 차선을 오차 없이 달리는 모든 드라이버들이 경이롭게 보이곤 했는데, 큰 일을 치루고 나니 갑자기 겁이 없어졌다. 죽기밖에 더할까 하는 베짱이 생긴 것이다.


고통을 상대하는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나는 회피보다는 대면, 직면 쪽을 택했다. 평소에는 우유부단하고 겁이 많은 유형이지만 아주 큰 일을 만나면 나는 항상 그런 선택을 해왔다. 군대도 그랬다. 조금만 살을 더 빼면 면제를 기대할 만큼 약한 몸이었지만 그때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내 평생에 부끄러운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결과는 사단장 표창이었다. 500명 중에 단 5명에게만 주는... 비록 전경으로 차출되는 바람에 포상휴가는 휴지조각이 되었지만.


죽을만치 힘든 일을 겪다 보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 세상에 믿을 것은 나 하나 뿐이라는 뼈저린 경험을 하게 된다. 나 홀로 선택을 해야 하고 그 결과를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그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인생의 몇몇 선택은 그렇게 외로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 때는 두 가지 길 뿐이다. 주저앉거나 나아가거나.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질문이 틀렸다. 무슨 일이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나는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무지하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쪽을 선택했다. 그래서 운전면허 따위는 마실 산책 가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게 됐다. 결과도 그리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혹시 연초부터 나 처럼 힘든 일을 겪고 계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죽을만큼 아픈 상황에 놓여있는 분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나는 위로하지 않겠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힘든 일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사람이 있고 '낙오'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 성장하는 쪽을 택했다. 아프고 힘들고 미칠만큼 괴로운 쪽의 길이었다.


그러니 한 번뿐인 인생 비겁하게 살지 말자. 혹 아는가. 언젠가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오늘을 추억할 수 있게 될지도. 지금 같아서는 그게 가능할까, 여전히 의심이 가지만 말이다. 부디 당신의 삶에 건투를 빈다. 그리고 가끔은 대견한 내 자신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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