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당시 회사원이던 신하나씨는 서울 마장동에 있는 정육점 거리로 회식을 갔다고 한다. 그런데 원없이 고기를 먹고 나왔음에도 평소와 다른 묘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붉은 조명과 동물들의 사체, 피비린내와 살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이 갑자기 불편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때마침 유튜브에서 유로프스키의 강연을 보았던지라 그 경험은 더욱 강렬했다. 그는 미국에서 동물 권리 활동가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신 씨는 이 강연을 통해 다음과 같은, 축산업에 대해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오리가 산 채로 가슴털을 뜯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동물이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 씨는 문득 이렇게 만들어진 제품을 입거나 들고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동물들의 고통으로 만들어진 옷은 앞으로 입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당장 잆을 옷이 없었다. 남은 방법은 하나였다. 결국 직접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덜컥 회사를 창업했다. 10년 째 비건을 실천 중이던 박진영 씨도 의기투합했다. 비건 브랜드 '낫아워스(NOT OURS)'의 시작이었다.
최근 글로벌 패션 업계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동물 착취 없는 패션'이다. 구찌의 전문 경영인(CEO) 마르코 비자리는 이미 '퍼 프리(Fur Free, 동물의 털을 사용하지 않는 것)'를 선언한 바 있다. 한때 소수의 취향으로 여겨졌던 비건(Vegan, 완전 채식주의)이 먹거리와 입을 거리 등, 우리의 생활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동물 착취를 반대하는 비거니즘의 개념도 널리 퍼지고 있다. 이제 비거니즘은 우리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비건 패션이란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의류를 말한다. 이런 동물성 소재에는 깃털과 솜털(오리,거위), 울(양모), 캐시미어(염소), 실크(누에고치), 소뿔과 자개단추 등이 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낫아워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상품은 단연코 선인장으로 만든 제품들이 아닐까 싶다. 텀블벅에서 펀딩을 진행한, 선인장으로 만든 가죽 카드홀더는 당시 목표 금액의 427%를 달성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제품은 멕시코에서 비와 흙 속의 무기질을 머금고 자란 선인장으로 만들어진다. 선인장 잎을 수확해 3일 동안 햇볕에 말린 후, 가루로 빻아 다른 성분과 섞어 섬유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인장 카드홀더는 1200일 정도면 50%가량 생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게다가 선인장 가죽에는 동물 가죽 제조과정에서 사용되는 중금속, 프탈레이트, PVC 등의 독성 물질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동물 가죽과 달리 무두질 과정도 없다. 자연스럽게 노동자가 유해물질에 노출되는 일도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실용성이 높다. 선인장 가죽 가방은 일반 가죽 가방보다 두세 배 가볍다고 한다. 당연히 몸에 가해지는 무게 부담도 덜하다. 이렇듯 동물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친환경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것, 이것이 낫아워스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은 아니었을까?
친환경 제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는 '프라이탁'이다. 이 브랜드는 버려진 트럭의 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들었다. 사실상 원가 제로의 이 제품은 '친환경, 리사이클'의 가치를 담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하지만 낡고 기름때 묻은 이 방수천을 세척하면서 생기는 환경 오염은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물론 나름의 재처리 시설은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제품이 진열된 매장을 방문했을 때의 강렬한 세제 냄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낫아워스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과연 수백년 간 썩지 않을 ‘합성수지’ 옷이 가죽 옷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낫워스의 대답은 비교적 선명했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이들 브랜드의 결론은 ‘최대한 오랫동안 입을 옷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구입하면 여러 세대에 걸쳐 오래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마치 자신의 자켓을 사지 말라고 광고하던 파타고니아처럼 말이다. 이것도 지구 환경을 지키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 믿는 듯 했다. 브랜드는 트렌드를 올라타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 하지만 자신이 주장하는 가치만 앞세워서도 안된다. 언행일치는 기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낫아워스를 기대와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