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총 5대의 노트북이 있다. 휴대용 12인치 맥북을 비롯해 맥북 프로, 맥북 에어, MS 서피스, 씽크패드 X1도 있다. 기계식 키보드는 3종, 맥용 키보드 3종, 휴대용 키보드도 서너 대 있다. 아이패드는 프로, 에어, 9세대, 미니, 갤럭시 탭을 모두 써보았다. 현재 가지고 있는게 이 정도지 중고로 샀다가 판 제품은 수도 없이 많다. 아이패드 프로, 에어, 미니는 가각 두 번을 샀다가 다시 팔았다. 노션, 베어, 에버노트, 율리시스, 스크리브너 같은 글쓰기 프로그램을 비롯해 국내외 마인드맵은 종류대로 다 써보았다.
키보드를 예로 들어보자.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일반 키보드와 기계식 키보드의 키감이, 촉감이, 타건 소리가 얼마나 다른지를 말이다. 해피킹을 아는 사람들에게 수십 만원 하는 키보드는 결코 사치가 아니다. 맥북은 한없이 차갑고 냉정하지만 화면은 쨍하고 일처리는 분명하다. 반대로 어딘가 나사 하나 풀린 듯 모자라지만 따뜻한 키보드에 매료된 씽크패드는 쓰면 쓸수록 정이 간다. 다만 중국산 레노버라는 브랜드명 대신에 꼭 씽크패드 X1이라는 모델명을 고집한다. 아이패드는 크기와 모델에 따라 각각 사용하는 용도가 모두 다르다.
알고 있다. 부질없는 짓임을 안다. 좋은 도구를 가졌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언젠가 최고의 음악 평론가 중 한 사람이 손바닥만한 라디오 하나로 음악을 듣는다는 글을 읽었을 때는 자괴감이 몰려왔었다. 솜씨 없는 사람이 연장탓을 한다. 몸매가 좋은 사람은 트레이닝을 입어도 멋있어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글을 쓸 시간에 나는 프리스비를, 애플샵을, 강남역에 있는 삼성 딜라이트샵을 들락거린다. 좋은 도구가 주는 이상한 부심 때문이다. 쓰지 않고 보기만 해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또 새로운 키보드를, 노트북을 아이패드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이 일종의 리추얼이라는 것을. 느릿 느릿 책상 위에 앉는 과정은, 노트북을 열고 로그인을 하는 순간은, 키보드를 세팅하고 폴더를 정리하는 의식은, 이 지난한 글쓰기의 과정을 견디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는 사실을. 마치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배트를 세 번 휘두르거나, 바닥에 글씨를 쓰거나, 헬멧 끝을 두 번 만져야만 하는 루틴과 다르지 않다. 종교마다 예배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순서가 있듯이 이 모든 사치에는 이유가 있다. 도구가 좋다고 좋은 글이 나오지 않지만, 도구라도 좋아야 글쓰는 고통을 참을 수 있다고 (적어도 나만은)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전 회사의 대표가 이런 말을 했었다. 중요한 계약을 할 때 굳이 몽블랑 펜을 써야만 한다고. 어떤 성공한 지인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롤렉스 사진을 올렸다. 자신을 위한 작은? 선물이라고. 열심히 일 잘하던 후배 하나가 어려운 프로젝트를 마치고 몰디브 여행을 갔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열심히 놀다 오겠노라고. 글을 잘 쓰고 싶은가. 좋은 노트북을 사라. 기계식 키보드를 한 번 두드려 보라. 아이패드로 자료를 읽으며 애플 펜슬로 메모를 해보라. 효율의 문제가 아니다. 기분의 문제다. 당신의 글쓰는 시간은 행복해져야만 한다.
사람은 그런 존재다. 환경이 성과를 만든다. 글 잘 쓰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만의 의식이 있다. 글쓰는 시간이, 공간이, 도구가 있다. 굳이 헤밍웨이를, 스콧 피츠제럴드, 무라카미 하루키를 이야기하지 말자. 그들도 그랬다고 애써 변명하지 말자. 도구에 매달리는 나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진 말자. 글을 쓰는 도구를, 시간을, 공간을 사랑하기 위해 아주 가끔은 겉멋 든 예술가가 되자. 그렇게라도 해서 한 편의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게 어딘가. 이 모든게 글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어이 써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인고의 시간을 견디기 위해서라면 이 정도의 낭비와 사치는 눈 감아 주자. 그렇게 큰 돈이 드는 일도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