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글감옥이라는 이름의 글쓰기 모임이 있다. 매일 한 편 이상의 글을 함께 쓰는 단톡방 이름이다. 이 방의 룰은 단순하다. 3주간 매일 글을 쓰고 이를 '비틀리'로 줄여 주소를 공유한다. 참가비로 만 원을 낸다. 그리고 3주 후에 쓴 일수만큼 환급을 받는다. 글을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참가비에서 차감이 된다. 그 금액은 완주한 사람의 상금으로 지급된다. 이런 룰로 벌써 22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오늘은 시즌22의 첫째 날이다.
글쓰기에 문법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걷기를 배우는 것처럼, 자전거를 배우는 것처럼, 수영을 배우는 것처럼 맨 몸으로 도전해야 한다. 글쓰기의 감각이 습관처럼 몸에 새겨지면 그때부터 변주도 가능하다. 문제는 거기까지 도달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가족들이 기다려주고 응원해준다. 걷지 못한다고 나무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끝없은 격려와 인내로 아이들을 응원한다. 영어를 문법으로 접근하면 어렵다. 그러나 주변 사람 모두가 영어를 쓴다면 자연스럽게 말문이 트일 것이다.
함께 글을 쓰는 모임이 굳이 필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누군가가 응원하고 격려하는 분위기에서는 글도 잘 써지게 마련이다. 일일이 평가하고 딴지를 거는 환경 속에선 제 아무리 헤밍웨이라도 좋은 글을 쓰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황홀한 글감옥'은 다르다. 아무리 짧은 글을 써도, 말이 안되는 글을 남겨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매일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멋진 글을 쓴 사람을 보면 잘 쓰고 싶다는 욕구가 불끈 일어난다. 내가 쓴 글에 댓글이라도 달리는 날엔 날아갈 듯 기쁘다.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저도 모르게 샘솟는다.
브랜드 전문지에서 막 일을 시작했을 때였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 글감을 준비하고 원고를 쓰는 과정엔 피드백 미팅이 있었다. 서로의 글을 평가하는 이 시간은 언제나 긴장감이 흘렀다. 팔리는 책을 만들기 위해선 당연히 필요한 데스크 미팅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글을 평가받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용기와 담력이 필요하다. 하루는 내가 쓴 글에 대해 후배가 매우 냉정하게 평가한 적이 있었다. 논리가 없고 비약이 심하다는 피드백이었다. 하지만 막 일을 시작하는 나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홀로 미팅룸을 나와 원고를 계단에 패대기쳤다. 일을 하는 내내 나는 우울했다. 자존감은 한없이 떨어져 공황장애까지 왔다. 그렇게 7년을 버티고 버텨 지금에 이르렀다.
견디고 버틴다고 좋은 글이 나오진 않는다. 칭찬을 받는다 해서 글이 늘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독자가 필요한 글을 쓰는 것이다. 그 다음 나답게 쓰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읽는 글이라면 치밀하고 완벽하게 써야 할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독자들이 읽는 에세이라면 그 완벽함이 오히려 독이 될지 모른다. 우리가 글 쓰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독자를 정하는 일이다. 누가 읽을 글인지 알고 써야 읽히는 글, 팔리는 글을 쓸 수가 있다. 그 다음은 내가 그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써야만 한다. 그래야 나다운 글이 나오는 법이다. 이 둘의 교집합에 바로 내가 써야 할, 쓸 수 있는 나다운 글이 있다.
당신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당신이 쓴 글을 읽을 독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당신은 그런 글을 쓸 수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하라. 우리는 서로 얼굴도 다르고, 목소리도 다르고, 체형도 다르다. 지식의 수준도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도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한 것들도 모두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생각에 공감하고, 내 행동에 동의하며, 내 선택을 응원해줄 사람들 곁에 가까이 있는 일이다. 좋은 글이란 공감하는 글이다. 나와 다른 사람들이 내린 평가에 주눅 들지 말라. 나다운 글을 인정해줄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찾으라. 사막에는 물이 필요하고, 북극엔 불이 필요한 법이다. 내 글을 읽어줄 독자를 찾으라. 제대로 된 평가는 거기서부터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생각을 교환하고, 지식을 공유하며, 경험을 향유해보라. 함께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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