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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어려운 첫 줄 쓰는 법

나는 많은 글들을 '사적인 경험'으로 시작한다. 시간, 날짜, 장소를 상정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이런 글은 주로 논픽션 작가들이 선호하는 글쓰기 방법이다. 가장 큰 이유는 '몰입'이 쉽기 때문이다. 첫 줄을 통해 그 사건이 일어난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가는 것이다. 이런 글을 잘 쓰는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티핑 포인트'를 쓴 말콤 글래드웰이다. 그가 쓴 책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쓰여졌다. 어려운 글이나 인사이트가 필요한 글일수록 이런 서술 방식이 더욱 효과적이다. 마치 쓰디 쓴 맛을 숨기기 위해 달콤한 시럽이나 캡슐로 둘러싼 요즘의 약 같다고나 할까.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편집장 한 분은 대부분의 첫 장을 '어원'을 밝히는데 쓰곤 했다. 예를 들어 '학교(School)'란 단어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스콜레(Schole)'이다. 이 말은 배움이나 학습이 아닌 '여가'를 뜻하는 말이라는 점이 재밌다. 놀랍게도 그리스어나 일을 뜻하는 단어조차 없다고 한다. 굳이 일을 표현하자면 '여가의 부재'라고 써야만 했다. 이런 글쓰기는 읽는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고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쓰고자 하는 글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그 무언가의 본질에 다가서고 싶게 만든다. 그래서 글쓰기의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다양한 사전이나 참고 서적의 목록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첫 글을 항상 명언이나 격언으로 시작하기도 한다. 마치 똑똑한 유튜버들이 하이라이트 장면을 첫 신에 배치하는 것과도 같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함축한 격언은 글에 품격을 더하기도 한다.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의 촌철살인의 한 마디는 언제나 효과적이다.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지도를 가늠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인상적인 인터뷰의 한 구절을 따옴표로 따오는 것도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같은 내용이면 대화체 읽기를 더 선호한다. 그 누구라도 일방적인 연설보다는 함께 하는 대화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 대화 역시 명언이나 격언처럼 앞으로 이어질 내용에 대한 복선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내용이 내 경험의 영역에 있다면 그 현장에서 글을 시작하라. 1993년 겨울, 뉴욕의 센트럴 파크에서 파란 정장을 입은 긴 머리의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그 사람이 앞으로 무슨 행동을 할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는가. 경찰이 쓴 조서 같은 육하원칙의 글이 항상 완벽한 것은 아니다. 발가벗은 사람보다 중요한 부위를 가린 사진이 더 선정적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글은 사람의 뇌를 자극한다.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써야 할 글이 내가 직접 겪은 일이라면 이런 글쓰기를 연습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내가 써야 할 글이 경험이 아닌 지식이나 정보의 영역에 있다면 다양한 간접 사례들을 수집하라. 그들이 직접 한 말에 주목하라. 설명이 필요한 글이라면 그 단어의 어원을 쫓아가보라. 이 모든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읽게 하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특히 우리 민족은) 모든 내용이 들어 있는 매뉴얼이나 사전을 잘 읽지 않는다. 나와 관련이 있거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누군가의 경험담일 때 비로소 눈길을 돌린다. 그제서야 읽기 시작한다. 공감과 내용 전달은 그 다음이다. 광고에서 카피가 중요하고, 책을 만들 때 제목과 목차가 중요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읽히지 않은 글은 의미가 없다. 팔리지 않는 책은 독자들의 이목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멋진 첫 줄 쓰기를 연습하라. 당신만의 방법을 개발하라. 이 노력은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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