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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글을 쓰고자 하는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는 인간과 닮은 복제 인간이 나온다. 워낙 비슷해서 이 둘을 감별하는 기계가 따로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인간과 복제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이 대체 뭘까? 그게 바로 '기억'이다. 인간은 과거를 추억하고, 회고하고, 반추할 줄 안다. 어쩌면 인간이란 그 사람의 기억의 총합일지 모른다. 비록 그것이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나는 이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는 본질적인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간직할 기억과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남기고 싶어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을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 간절함 역시 '인간다움'의 방증인지도 모르겠다.


1년 간 함께 한 권의 책을 쓰는 프로젝트가 30분 만에 마감되었다. 개인으로서는 결코 만만찮은 비용인데도 순서를 다퉈가며 앞다투어 지원했다. 내가 이러한 도전을 함께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글을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읽었기 때문이고, 뚜렷한 목표가 있을 때 더 열심히 참여할 것이라는 가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참으로 독특한 존재다. 어떤 식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누군가의 기억에 심어놓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런 도전은 숭고하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유를 따지지 않고 함께 있고 싶어한다. 다른 이유 때문에 결혼한다면 아마도 갈등의 소지가 훨씬 크지 않을까?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글을 잘 쓰기 위한 온갖 기술과 지식보다도 중요한 것은 '쓰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순수할수록 좋은 글을 오래 쓸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들이는 노력 대비 경제적 보상이 상대적으로 적은 활동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것만큼 비효율적인 선택은 다시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된 한 권의 책을 받는 것만큼이나 감동적인 순간도 다시 없다. 내 인생에 가장 보람된 순간을 꼽는다면 그것은 책장마다 빼곡이 책갈피로 접혀진 내 책의 사진을 보았을 때다. 내 생각, 내 글에 그토록 공감했다는 뜻일테니까. 그 사진을 본 날은 하루 종일 행복했다. 그 여운은 지금도 남아 있다. 우리가 글을 쓰려는 이유는 자기 만족 그 이상이다. 이 세상에 내가 살아 있었다는 것,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쓸 때만큼은 순수하고 숭고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자. 우리의 삶은 유한하지만 우리의 글은, 생각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반드시 좋은 글을 쓸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루 종일 고민하는 어느 연인의 마음처럼 간절함은 기필코 길을 찾기 마련이다. 글쓰기는 긴 여정이다. 어쩌면 평생의 여정이다. 그리고 그 길을 가는 동력은 당신의 DNA에 아로새겨진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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