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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를 설득하는 두 가지 글쓰기 방법

평범한 미팅인 줄 알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앞선 미팅을 마치고 가는 길에 문자를 넣었다. 클라이언트로부터 그날의 미팅 이슈에 대해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이런 미팅도 있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뒤이어 날아온 카톡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투자자 두 분과 함께하는 미팅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설명만 해주면 된다고 했다.


'설명만?'


세상에는 수많은 거짓말이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그냥 간단한 제안서 하나만 보내주세요.' 천만에 말씀이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간단하게 제안했다가는 프로젝트는 커녕 핀잔이나 욕을 먹을지도 모른다. 하물며 투자자 앞에서 '설명'만 하라고.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약속 장소 근처에서 마음의 준비를 했다. 이왕 벌어진 일이고 나는 이 PT를 잘 마쳐야 한다.


이때 내가 생각한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첫째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줄 아이스 브레이킹을 준비하자. 아무리 좋은 정보를 얻는 자리라도 사람은 들을 준비가 있어야 듣게 마련이다. 첫 5분에 듣는 사람이 혹할 주제를 던지지 못하면 그 PT는 끝까지 지루한 발표가 된다. 하물며 수백억 대의 자산가가 이제 막 시작한 비즈니스에서 얼마나 큰 흥미와 호기심을 느끼겠는가.


그날의 투자 제안 아이템은 반려동물과 관련된 제품이이었다. 나는 어느 날 와이프와 딸이 엉엉 울던 그날의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했다. 당시 우리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다. 루이와 엘리자베스였다. 그 중 엘리자베스가 바이러스에 걸려 너무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리고 와이프의 손에 이끌려 간 곳은 반려견 장례식장. 그 자리에서 기본 비용만 90만원 하는 기막힌? 비즈니스 모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그런데 당시 참가했던 투자자가 똑같은 사업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 후 나는 바로 그 투자자로부터 자신의 사업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말이 있다. 아이스브레이킹은 어쩌면 구슬을 꿰매는 실 역할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첫 구슬을 실에 꿰면 그 다음은 쉬워진다. 처음 만난 여성의 기호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이게 당연한 이야기라고? 그렇다. 그런데 왜 수많은 사람들이 그 당연한 방식을 글을 쓰지 않고 강연을 하지 않을까. 위의 이야기를 우연으로 치부하지 않길 바란다. 내가 그 투자자에 대한 기본 정보를 알았다면 그 발표는 더욱 더 잘했을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하나는 무조건 'Why'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는 거였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또 한 가지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지금부터 하게 될 이야기, 쓰게 될 스토리의 이유를 말하는 것은 모든 글과 말의 기본이다. 그런데 처음부터 What과 How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물론 중요한 이야기는 두괄식으로 말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 중요한 말이 '화자'의 것이라는게 문제다. 글과 말의 주인공은 사실상 '청자'다. 그 사람이 듣고 읽어주지 않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나는 투자자에게 왜 우리가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부터 먼저 이야기했다. 왜 지금 이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 유리한지를 다양한 팩트와 정보로 설득했다. 나는 제품의 특장점부터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을 넘어 1500만을 헤아리는 지금 왜 그 제품이 아직 시장에 없는지 질문을 던졌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투자자들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나는 걸 놓치지 않았다. 1시간 정도면 충분했을 그 미팅은 2시간 반이 지나서야 끝이 났다.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대성공이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의 마음을 첫 5분에 반드시 끌어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글을 써야 한다. 그래서 아이스브레이킹에 필요한 소재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왜 미국의 논픽션 작가들이 하나같이 자신들의 생생한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Why로 연결되어야 한다. 내가 왜 최소한 서너 시간이 걸리는 독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먼저 말해야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그 첫 번째와 두 번째 구슬이 몰입으로 이끄는 아이스 브레이킹이다. 집중으로 이끄는 Wh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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