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요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스킬을 가진 셰프라고 해도 재료가 좋지 않다면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 말하는 재료란 결국 '글감'이다. 신선한 고기, 갓잡은 생선, 싱싱한 야채는 원재료의 맛만 잘 살려도 좋은 음식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MSG와 같은 조미료가 필요한 것은 그 신선함 만으로는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신선한 소재, 생생한 이야기는 설사 글쓴이가 화려한 글솜씨를 지니지 않다 해도 빛이 나게 마련이다. 문제는 어떻게 좋은 글감을 발굴할 수 있는가의 여부다. 나는 그 차이가 다름아닌 '질문'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는지, 무엇에 갈급해하는지를 질문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마케팅에서는 그것을 pain point라고 부른다. 나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법으로 이런 질문들을 매일 사냥?하고 있다.
1. 책의 목차를 읽어보라.
뻔한 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는 전공 분야인 마케팅과 브랜드 관련 책은 거의 매일 검색하고 구매하고 정독한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책들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모든 책들을 다 사서 볼 수는 없기에 제목과 목차를 집중적으로 서치한다. 그곳에 사람들의 욕구와 니즈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와 출판사는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최소한 몇 달, 때로는 몇 년의 시간을 쏟아붓는다. 각 분야의 전문가자이자 실무자인 이들은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해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그리고 그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다름 아닌 목차를 다듬는 일이다. 그곳에 우리가 전혀 몰랐던 새롭고 놀라운 '질문'들이 숨어 있다.
그러니 최소한 자신이 관심있어 하는 분야의 책이 나오면 제목과 목차를 주의 깊게 읽어보고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보라. 무조건 다독하라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사람들이 어떤 글을 읽고 싶어하는지,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확인해보라는 의미다. 이것은 이후 자신만의 키워드를 찾는 노하우와 직결된다. 매일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신간과 베스트셀러의 목차를 읽어보라. 시간이 된다면 미리보기의 서문 정도만 읽어봐도 부족하지 않다. 한 권의 책이 가진 모든 노하우가 이들 목차에 숨어 있으니까 말이다.
2. 드라마의 시즌 1, 첫 화만 지켜보라.
대중이 열광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질문'의 보고다. 작가와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감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특히나 넷플릭스는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하는 드라마와 영화 만들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 회사다. 넷플릭스의 회장은 젊은 시절 비디오 가게에서 일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이 일하는 가게의 모든 비디오를 보고 손님들에게 추천하는 서비스를 해서 유명해졌다. 우디 앨런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그와 비슷한 소재와 완성도를 가진 영화를 소개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바쁜 우리에게 그런 정도의 시간을 쏟을 여유는 없다. 그러니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면 첫 시즌 1의 첫 화나 첫 10분을 주목해서 보라. 특히나 드라마의 첫 화는 '파일럿'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회를 만들어 반응을 보고 이후 드라마의 제작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파칭코' '나의 해방일지' '우리들의 블루스'에 대중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어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었기에 그토록 많은 인기를 얻는 것일까?
내가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는 '나의 해방일지'다. 가장 큰 이유는 전작인 '나의 아저씨'라는 명작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주는 여운이 적지 않다. 경기도를 서울을 둘러싼 달걀의 흰자로 묘사한 대사는 정말 가슴을 때렸다. 화려한 삶의 언저리, 그늘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절절하게 때린다. 회사 동호회에도 끼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런데 왜 이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10년 이상 방영 중인 '나는 자연인이다'의 인기와 그 맥락이 닿아 있지 않을까?
3. 카페에서 옆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봉준호와 같은 세계적인 감독이 즐겨 쓰는 방법이다. 카페에 혼자 가서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라.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지나치게 사적이거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대화라면 카페에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주제도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이들이 나누는 대화만큼 생생한 이야기도 다시 없다.
어느 날 카페에서 일하던 나는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골프를 치고 나온 후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들을 수 있었다. 왜 이들이 골프에 열광하는지, 남편과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시댁과의 관계가 어떤지, 무엇을 가장 고민하고 힘들어하는지를 생생하게 엿들을 수 있었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항상 호기심에 가득한 사람이다. 하지만 책이나 드라마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가공된'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진짜 사람들의 이야기는 카페에서 찾을 수 있다. 스토커가 되라는 말이 아니다. 대중과 호흡하고 그들의 삶에서 정말 필요한 글감을 찾아보자는 제안이다.
나는 왜 탁월한 능력을 지닌 대기업의 신입 사원들이 채 3년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뛰쳐 나오는지가 너무도 궁금하다. 나이 마흔을 넘겨 홀로 서야하는 비슷한 또래 남자들의 고민에 답을 주고 싶다. 한 동네에서 20년 이상을 사랑받을 수 있는 가게의 비밀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수많은 광고들의 카피와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나답게' 사는 방법을 찾기 위해 10년 이상의 시간을 투자했다. 그 결과 벌써 직접 쓴 세 권의 책을 비롯해 20여 권의 책을 작업할 수 있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가려워하는지 캐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글이나 책은 그저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스킬과 책을 내는 노하우보다 좋은 질문을 찾아다녀보라. 책을 보고 드라마를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이렇게 찾은 글감들이 당신을 유니크한 한 명의 작가로 우뚝 서게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