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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올해 나이 서른, 정팀장은 예명이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다. 전주에서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팀장으로 일을 한다. 이력서의 이름 밑에는 '로컬을 가장 잘 아는 올 플레이어 교육 큐레이어'라고 씌여져 있다. 평일 오후, 3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온 정팀장을 만났다. 그녀는 왜 나를 이곳까지 만나러 와야 했던 것일까?


자신을 브랜딩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녀의 이력을 들었다. 호기롭게 상경해 조그만 화장품 회사를 다녔지만 오래 다니지 못했다. 다양한 알바를 섭렵했지만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다시 내려갔다. 거기서 지역 최초의 공유 오피스를 만나 불꽃을 태웠다고 했다. 지금은 폴리텍 대학에서 진로를 돕는 강의도 한다고 했다. 참으로 열심히 산 분이다. 그런데 나침반 없이 열심히만 사는 분 같다. 잘못된 건 아니다. 나도 그랬으니까.


펜을 빌려 긴 선을 하나 그렸다. 그녀는 31세, 나는 서른 다섯에 진로를 틀었다. 그 후 10년은 그야말로 고군분투의 시간이었다.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왔다. 이제 내 나이 오십, 겨우 내 갈 길을 찾은 듯 하다. 서른에 답을 찾는 건 어찌 보면 욕심이다. 내 친구들 중에도 이런 방황을 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평생 답만 찾다가, 고민하다가 생을 마칠 순 없다. 나는 천천히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이 오십에 내가 깨달은 건 내가 글을 좀 쓴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남들보다 조금 더 '쉽게' 쓰는 편이다.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어렵게 쓰지 못한다. 느지막히 강연에도 재미를 붙였다. 지난 5년 간 백여 회 이상의 강연을 했다. 이제 더는 남들 앞에 서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다. 이게 내가 잘하는 것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게 생겼다. 그게 바로 '브랜드'다. 10년 넘게 이 일을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부담되고 두렵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좋아한다. 브랜드란 단어만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인다. 관련 기사는 일단 스크랩부터 하고 본다.


이게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들이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내가 잘하는 것 남도 잘한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넘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은 남들도 좋아한다. 전문가들이 차고 넘친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한 가지를 더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름의 가치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다. 남들 보기에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스몰 스텝'이라는 책을 썼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변화를 다룬 책이다. 브랜드도 '작은' 브랜드를 좋아한다. 동네의 이름 없는 빵집, 작은 병원, 두 세 사람이 만든 조그만 제품에 열광한다. 작은 것들의 가치를 뒤늦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세 개의 원을 그렸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교집함에 색칠을 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차별화하고 브랜드로 만들었다. 그 결과 돈도 많이 번다. 무엇보다 내 삶이 즐겁고 행복해졌다. 세상엔 글 잘 쓰고 강연 잘하는 사람이 넘쳐난다. 브랜드 컨설턴트는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아주 작은 브랜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아직 소수다. 그 접점에 내가 있다. 예를 들어 소상공인 관련 기관에서 강연자를 찾는다면 누굴 찾을까? 바로 나다. 그런 기관과 회사들의 강연과 컨설팅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정팀장에게 물었다. 잘하는 게 뭐죠? 강연, 그리고 사람들에게 서비스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대뜸 고객 만족이란 말이 먼저 나와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진심인 거다. 좋아하는게 뭔가요? 브랜드라고 했다. 그렇다면 소중한 것은요? 답을 잘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녀의 이력엔 '로컬'이란 키워드가 이미 선명하게 들어가 있다. 전주라는 지역을 사랑하고 아낀다.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고 지역의 회사, 지역의 사람들을 도와왔을 것이다.


글부터 쓰자고 했다. 왜냐하면 개인이 스스로를 브랜딩할 수 있는 방법은 글과 말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 앞에 말을 하려고 해도 자신만의 책은 꼭 필요하다. 두 시간 강연을 홀로 듣고 나를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브런치부터 패스하자고 했다. 그대신 최소 1년 꾸준히 써보자고 했다. 전주란 지역의 특별한 브랜드를 아느냐고 물었다. 잘 안다고 했다. 그런 브랜드를 찾아 연재해보자고 했다. 그러겠다고 했다. 그대신 멀리 보자고 했다. 나도 10년이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2,3년 만 해도 전주, 로컬, 브랜드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정팀장이 될 거란 사실을 말이다.


브랜드란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가치'를 전달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문제는 어떤 가치를 전달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나는 나이 50에 '스몰 스텝'이란 키워드를 잡았다. 구글에 내 이름을 치면  스몰 스텝이 함께 따라 나온다. 브랜딩이 된 것이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브런치에 900여 개의 글로 써놓았다. 누가 볼까 싶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정팀장이라고 못할게 뭐가 있을까?


나도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나이 마흔을 넘어서까지 나는 연봉 3000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다섯 배를 번다.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건 내가 신나고 재밌고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를 믿고 내게 일을 주는 사람이 많아졌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니 성과도 좋다. 브랜드가 별건가? 이렇게 나의 가치를 타인을 통해 확인해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내 책을 읽고 빼곡히 밑줄을 치고 페이지 끝을 접은 사진을 누군가 보내주었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내가 태어난 이유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건 돈이나 명성과 비교할 수 없는 만족이고 행복이었다. 내가 가치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너무도 선명하고 뚜렷한 증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브랜드가 되고 싶다면 아래의 세 가지 질문에 답을 해보자. 당신이 좋아하는 일은? 잘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만 해도 고민이 될 것이다. 그럴 땐 남에게 물어보자. 지금까지 아주 작지만 성공한 경험들을 낱낱히 기록해보자.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그리고 다음의 마지막 질문에 답해보자.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원하는가? 무엇보다 어떤 일을 할 때 가장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는가?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의 접점에 있는 내 모습을 하나의 단어로 기록해 보자.


사람도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선명하게 알고 있다. 즉 왜 자신이 이 세상에 왔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를 지난 경험을 통해, 앞으로 계획을 통해 타인에게 웅변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의 눈빛은 확신으로 가득차 있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빨려들 듯한 매력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여럿 알고 있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 그런 사람이 되곤 한다. 정팀장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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