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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소한 '스몰리스트' 선언

평소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에게 내가 쓴 브런치 글의 링크를 보내줬더니 이런 톡을 보내왔다. 나는 크게 망설이지 않고 다음과 같은 답을 써보냈다. 사실 가치란 말은 어려운 말이다. 종종 쓰지만, 좋은 말인지 알지만 함부로 쓰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그럴듯한 말이긴 한데 모호한 표현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을 찾아보는 것이다.


내가 네이버 사전에서 발견한 '가치'란 말의 원래 뜻은 쓸모이다. 브랜드 강의 때마다 주구장창 얘기하는 바지만 모든 물건은, 제품은 쓸모를 가지고 있다. 가방은 물건을 담고 자동차는 사람을 A에서  B 지점까지 옮겨 준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만일 가치가 쓸모를 뜻한 말이라면 굳이 수백 만원 하는 명품 백이 왜 필요한가 말이다. 그냥 검은 비닐 봉지에 담는 것으로도 쓸모를 다할 수 있지 않은가.



여기서 가치의 또 다른 뜻이 나온다. 그건 다름아닌 인간의 '욕구'다. 이런 말뜻을 생각하면 사람들이 굳이 명품백을 사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쓸모, 즉 필요를 넘어선 숨은 욕구, 욕망을 해소해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왜 명품백을 살까?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욕망, 때로는 과시하고 싶은 욕망도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욕구, 사랑을 확인받고 싶은 욕구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욕망에 기꺼이 수백 만원의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람은 좀 쉽다. 사람마다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작은 것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항상 힘없는 사람들에, 약한 사람들에, 소소한 물건들에 관심을 더 많이 가졌다. 정치적 성향도 여당보다는 야당에, 성공한 사람들보다는 실패한 사람들에, 젊고 건장한 사람들보다는 독거하는 노인들에, 거대한 프랜차이즈 빵집보다는 간판 없는 동네 빵집에, 거대하고 원대한 꿈보다는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들에 집중해 왔다. 지금까지 내가 써온 책들도 그 증거다.



아주 평범한 내 삶의 이야기를 다룬 스몰 스텝, 스몰 스테퍼스, 작지만 작지 않은 브랜드들의 이야기를 다룬 스몰 브랜드, 그리고 매일 매일 페이스북에 쓴 글들을 옮겨 담은 '스몰 스텝 글쓰기'라는 책을 출간 준비 중에 있다. 모두 'small'이라는 키워드를 핵심으로 하는 책들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자연스러웠다. 모두가 크고 원대한 꿈을 향해 달려갈 때 나는 반대 방향으로 조금씩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이 조금씩 인정받는 그런 트렌드의 변화에 올라탄채 어제보다는 조금 나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가치란 말은 여전히 어려운 말이다. 누군가 당신에게 어떤 가치를 지향하냐고 묻는다면 바로 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동산, 주가, 부에 관한 고민은 누구나 다 한다. 아파트의 평수와 자동차의 브랜드를 묻고 답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것도 '풍요로움'이라는 가치를 지향하는 대화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않는가.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것이 무엇인지를. 이른바 남다른, 차별화된 가치들이다. 누구나 말하지 않고 나만 말할 수 있는 것들을 우리는 비로소 '가치있다'고 부른다는 것을.


최근에 가장 핫한 브랜드 중 하나는 '감자빵'이라는 춘천의 제과? 브랜드였다. 감자로 만든데다 모양과 질감까지 감자를 쏙 빼닮은 이 빵은 그 희소성 때문에, 지역성 때문에 유명세를 탔다. 직장 생활에 지친 젊은 여성 한 분이 감자의 가치를 이해하는 아버지를 도와 만든 브랜드다. 매출의 크기와 명성으로 따지자면 이 브랜드를 결코 크지 않은, 작은, 스몰 브랜드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작은 브랜드들의 가치를 발굴하고 향유하고 있다. 이성당 같은 지역 빵집들은 어떤가. 삼진어묵, 덕화명란 같은 브랜드도 다 지역에 기반한 브랜드들이다. 바야흐로 '작은 것들의 전성 시대'인 셈이다.



나는 이러한 트렌드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거라 본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비로소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지향하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리던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물론 지금의 정치 상황을 보면 이 트렌드와 역행하고 있긴 하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검사들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은 내가 바라던 세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가치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도 계속될 것이다. 고졸의 유튜버가 흥하고, 개인이 출판한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 대기업 만큼이나 스타트업의 성공 사례가 더 많아지고, 남들 다 가는 맛집보다는 나만의 맛집 리스트에 진심인 사람들은 앞으로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나는 '작은 것들' 좋다. 에버랜드의 화려한 장미 축제보다는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나 있는 이름모를 들꽃들을 훨씬 더 좋아한다. 평범하고 때론 모자란 것들이 좋다. 화려한 디자인 보다는 꼭 필요한 선과 면, 색들로 구성된 미니멀리즘이 좋다. 조금 어눌하지만 진심을 꾹꾹 눌러 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정겹다. 그래서 나는 'small'의 가치를 앞으로도 더 많이 발굴하고, 전파하는 삶을 살 것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작은 것들이 위대해지는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어떻게? 그냥 나의 소소한 삶을 향유하면서 살겠다는 것이다. 크고 화려한 것만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나같은 평범한 사람의 가치도 위대해지는 그런 세상을 뚜벅 뚜벅 걸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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