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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틀린다, 우리 인생의 오류에 관한 이야기

코로나가 있기 전, 석헌님과 나는 스몰 스텝 활동을 함께 했었다. 그때는 매달 한 번 오프라인 모임을 열었다. 어느 누가 시킨 일이 아닌, 순수하게 자발적인 모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 석헌님은 운영진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불쏘시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 밥 한 번 같이 먹자'는 모호한 얘기를 싫어했다. 그 대신 내일 오후 몇 시에 같이 보자는 식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우리는 어쨌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만 했다.


석헌님과 함께 출판사 편집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가 던진 '틀림'이라는 화두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책의 제목은 '나는 매일 틀린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오류투성이인 그의 '실패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실패인 줄 알았으나 지나놓고 보니 도전이었던 용기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비슷한 삶의 궤적을 건너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왜 내가 이 제목에 그토록 끌렸는지에 대해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실패인 줄 알았던'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나는 과거 다니던 회사에서 브랜드에 관한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모든 에디터들이(그래봐야 서너 명이었지만) 서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시간이 따로 있었다. 이른바 편집회의였던 셈인데 그 농도가 만만찮았다. 회사 대표가 오케이 해도 이 편집회의를 통과하지 못하면 글을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회의에서 나는 매번 판판히 깨지곤? 했다. 그 이유는 글에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는 거였다. 이른바 '점프가 심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나는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때의 마음 고생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회사 건물 계단에 원고를 내동댕이치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그런데 이 경험으로 얻은 첫 번째 유익은 내 글이 짧고 단단해졌다는 점이었다. 불필요한 수사나 에세이적인 감상이 내 글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3권의 책을 썼고 네 번째 책의 출간을 앞두고 있다. 나는 이게 이른바 '오류의 수정'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꼭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도 쓰지만 네이밍 작업도 자주 한다. 하지만 이 네이밍은 논리적인 과정으로는 결코 신박한 작품을 얻을 수 없다. 이른바 내가 오류라고 알고 있었던 '논리적 비약과 점프'의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다. 그래야만 사람들로부터 '유레카'란 반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어센트 코리아란 회사의 네이밍 작업을 했다. 이 회사는 한 마디로 마케팅 테크 회사이다. 마케팅을 위한 획기적인 키워드 검색 솔루션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주로 검색하는 단어에 대한 기본적인 검색량은 물론 검색어가 어디로부터 유입되어 어떤 다른 검색어로 연결되는지를 한 눈에 보여준다. 나는 바로 이 서비스의 네이밍을 의뢰받았다. 주어진 기간은 단 2주, 이 미션을 덤덤히 받아들긴 했지만 부담이 이만저만 큰게 아니었다. 실제로 1주 만에 있었던 첫 번째 미팅에서 나는 어마어마하게 깨졌다. 적어도 내 심정은 그랬다. 이 프로젝트를 의뢰한 회사 대표의 의도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주말을 포함한 며칠이 주어졌다. 나는 사람들의 숨은 니즈를 파악한다는 이 서비스의 본질에 가까운 네이밍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히 '허블 망원경'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이 망원경은 이른바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낸 위대한 창조물이다. 대기권 밖에 망원경을 설치해서 구름이나 기상 환경이 만들어낸 잡음?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획기적인 우주 망원경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은하에 관한 사진은 바로 이 망원경으로 찍은 것들이다. 나는 이 과정이 어센트 코리아의 검색 서비스와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주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을 고해상도의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놀라운 검색 서비스, 나는 거기에 기존의 이름을 더해 'Listening Mind Hubbl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반응은 놀라웠다. 일단 서비스 담당자와 본부장 선에서 폭발적인 호응이 있었다. 우려했던 대표 미팅 역시 일사천리였다. 심지어 이 미팅이 있은 후 대표님이 허블 망원경에 빠져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사실 브랜드 컨설팅을 하다 보면 가장 어려운 작업이 '네이밍'이다. 하나의 단어로 서비스의 본질을 표현한다는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네 다섯 개의 카테고리를 정한 후 최소 100여 개 정도의 후보안을 뽑아내곤 한다. 그 중에서 한 두개라도 마음에 드는 네이밍이 나오면 대단한 성공일 정도다. 그리고 이 작업은 결코 논리적인 인과 관계를 거쳐 뽑아낼 수 없다. 온갖 잡학다식한 단어들이 점프의 과정을 거쳐 서로 연결될 때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이름을 하나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정답'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살아왔다. 사지선다에서 오지선다로 바뀌었을 뿐 교육 환경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시장에선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이 이미 도래해 있다. 석헌님이 쓰고 있는 '나는 매일 틀린다'라는 책의 컨셉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리가 오류라고 알고 있었던 것들이 어쩌면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자 모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실패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것은 동시에 도전과 용기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의 MZ 세대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패를 두려워 말라. 대신 아주 작게 도전하라. 그것이 활짝 만개한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유용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한 가지다. 석헌님이 쓰고 있는 '나는 매일 틀린다'라는 책의 사전 마케팅을 위해서다. 책을 찍고 나서 홍보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책은 새로운 생각과 주장을 선포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좋은 책은 사람을 움직인다. 마음을 움직인다. 일종의 무브먼트가 된다. 나는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이 틀렸으면 좋겠다. 그게 정말 틀린 거면 오류를 수정하면 된다. 하지만 또 많은 경우 그것이 결코 틀린 것이 아님을, 오히려 나다움을 발견하는 소중한 계기도 될 수 있음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발전해왔다. 그러나 그 정반합이 언제나 논리적인 수순을 따라 공식대로 움직이진 않는 법이다. 석헌님의 책을 기다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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