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여전히 잘 살고 있습니다만...

월화수목금금금, 이건 1인 기업가에게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현실이다. 평일에는 주로 미팅을 하고 주말에서야 비로소 자리를 깔고 제대로 된, 밀린 일을 해내곤 한다. 지난 주말이 그랬다. 시작한 날은 다 다른 프로젝트인데 얼추 비슷하게 마감이 닥치곤 한다. 그렇게 하얗게 날을 새우고 나니 벌써 8월이 되었고 밖에는 비가 오고 있었다. 편의점 아저씨였던가, 택시 기사였던가. 누군가가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고 말해주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바쁜건 나쁜거라고 말을 했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워라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바쁜 스스로를 '살아있음'으로 오해하고 받아들이곤 한다. 그래서 그들은 더더욱 워라밸을 갈망한다. 이럴 때는 5일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한다는 하버드대생들의 지혜 아닌 지혜가 떠오른다. 아마도 최재천 교수님의 책에서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버드생이 아니라 닥쳐야만 일이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문득 나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이럴 때는 허블이 찍은, 제임스 웹이 찍은 우주의 사진들을 찾아 본다.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를 가늠하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게다가 망원경에 찍힌 우주는 100억 년 전의 빛들이 아닌가. 요렇게 현실감각을 상실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티끌같은 인생 아닌가. 뭐 그렇게 닥달하며 사는가 하면서 말이다. 죽을 힘을 다해 천체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나의 이런 말을 얼마나 허탈해 할 것인가.


오선지 위의 음표를 떠올린다. 악보는 쉼없이 내지르다가 질식사할 연주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칸칸이 들어있는 음표들의 수는 정해져 있다. 중간중간 쉼표도 보인다. 그래서 나 역시 미팅 중간 중간 매버릭도 보았고 한산도 보았다. 주말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나름 악보를 따라 일을 했었다. 가끔씩은 에어컨을 켜는 호사도 누리고 말이다. 뭐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잘 살고 있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매일 틀린다, 우리 인생의 오류에 관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