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소심하지만, 잘 살고 있습니다 #25.
내게는 가벼운 강박증이 있다. 집을 나갈 때면 잠긴 문을 꼭 한 번 열어본다. 가스 밸브는 반드시 잠근다. 화장실을 나올 때도 반드시 물내림을 확인한다. 이 정도는 가벼운 정도다. 프로그램을 설치할 때면 바로 확인 버튼을 누르지 못한다. 경고창을 제대로 읽었는지 찜찜하기 때문이다. 유튜브를 볼 때면 몇 번 씩 이전 장면을 다시 보곤 한다. 마지막 장면에 나온 자막이나 내용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다.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 이런 강박에 피곤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며칠 전에는 불현듯 '뭔가를 했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문제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몰라서다. 뭔가 꼭 해야만 하는, 하지 않으면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2,3일을 간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심각할 일이 없다. 안전 불감증도 문제지만 안전 민감증은 더 큰 문제다. 일상 생활이 피곤해진다. 건강 염려증은 말할 것도 없다. 아주 젊은 시절에 그 힘들다는 대장 내시경을 세 번이나 했으니 말이다. 이런 성격은 직장 생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끼쳤다.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피곤한 삶을 살았다. 그게 우울증의 한 증상일 줄은 꿈에도 모른채 말이다.
결국은 병원에 갔고 좋은 의사를 만났다. 나는 이 때까지만 해도 내 의지력에 관해 의심과 회의를 품고 살았다. 하지만 의사가 던진 다음의 한 마디에 아주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리가 부러졌는데도 의지로 고칠 수 있나요?" 그리고 수년 째 그 의사를 만나 정기적으로 약을 처방받는다. 효과가 있었냐고? 물론이다. 예전보다 마음이 편해지자 식욕이 돌아왔다. 이제는 비만이 내 인생의 첫 번째 문제가 되었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다. 그래도 요건 어떻게 노력이라도 해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물론 약이 완벽히 내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한다. 요즘처럼 강박이 도져 피곤할 때가 있다. 그래도 지금은 견딜만 하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특정 영역이 조금 더 민감하게 세팅된 차다. 핸들링이 가벼운 차와 닮았달까. 하지만 그 덕분에 좋은 점도 많다.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은 더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 말과 글에서 디테일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상대적으로 솔직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예민한 나를 이제는 이해하게 됐다. 내가 나를 이해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받아주겠는가.
인생의 많은 문제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둔감해서 좋은 점이 있고, 예민해서 피곤한 영역이 있다. 그래서 어느 한쪽 면만 두고 함부로 타인을 평가하지 않으려 애쓴다. 다혈질인 사람을 만나면 실행력이 좋겠거니, 말이 서툰 사람을 보면 포용력이 있겠거니, 나를 닮은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마음이 열리곤 한다. 결국 문제는 나였다. 내가 나를 받아들이기 시작할 때 남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덜 모난 사람으로 일상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일에서도 조금씩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위대한 문학가와 과학자들 사이엔 얼마나 많은 우울증 환자들이 있었는지 모른다. 찰스 다윈은 젊은 시절부터 심한 강박과 불안, 우울증으로 고생했다. 그는 거의 40년 이상을 집에 틀어박혀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군 그의 치적을 강조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들도 결국 한 명의 인간이었다는 것, 불안과 강박에 시달렸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위로를 받곤 한다. 그리고 다윈에 비하면 나는 또 얼마나 행복한가. 이렇게 좋은 의사도 만나고, 처방도 만나고, 비슷한 사람들도 만나고 있으니. 그리고 이렇게 수다도 떨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