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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도 맛있는 제주 이야기, 해녀의 부엌

백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40. 해녀의 부엌

1. ‘해녀의 부엌’은 지난해 3월 제주 구좌읍 종달리 부둣가에 방치됐던 오래된 어판장을 공연장 겸 식당으로 개조해, 제주 해녀의 삶 등을 주제로 한 연극공연과 식사를 제공하는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탄생했다. 예약 손님만을 받아 150여분 동안 ‘해녀 어멍’(어머니의 제주 방언)을 비롯한 해녀 이야기로 연극공연을 하고 해녀가 직접 잡은 해산물 요리 제공, 해녀와 손님의 질의응답 시간으로 진행된다.


2. 김하원 대표(31)는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하는 뿔소라, 톳의 판로가 막히면서 해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해결 방법을 고민했다. 해녀 공연을 곁들인 다이닝 레스토랑을 선보이기로 하고 30년 동안 닫혀 있던 종달리 어판장을 리모델링했다. 김 대표는 “해녀의 삶을 진솔하게 묘사한 시연을 보고 종달리 해녀 어르신들이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3. 김 대표도 종달리 출신이다. 할머니, 큰어머니, 고모가 해녀인 집안에서 자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전공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준비하던 중 잠시 고향에 들렀다가 해녀들의 힘든 사정을 듣고 창업을 결심했다. 해녀의 부엌이 문을 열자 인기가 폭발했다. 뿔소라 등 해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면서 판로까지 넓혔다.


4. “뿔소라 역시 제주 해녀들의 채취로 1년에 2천톤 정도가 얻어지는데 그 중 80프로가 일본으로 수출된다. 그런데 엔저현상 등으로 가격이 점점 하락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제주도에서 최저가 보장을 해줄 정도가 되었고. 톳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또 다시 올라왔다. 톳도 뿔소라도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해산물이다. 그러다보니 해산물 시장이 큰 일본에 수출될 수밖에 없고. 안타까운 건 이 제품들이 일본 말고는 납품할 곳이 없음을 알고 단가를 계속 낮췄다는 점이다. 톳과 뿔소라, 연이은 문제를 알고 나니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브로드웨이 배우 지망생들이 운영하는 미국의 한 레스토랑 이야기를 들었다. 레스토랑이 무대가 되고 서빙을 하며 공연을 한다고. 그간 공연은 보는 행위, 식사는 먹는 행위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사례가 자극이 됐다. 어판장을 활용, 공연과 다이닝을 동시에 적용해 보기로 했다.”


6. '해녀의 부엌' 공연의 힘은 무엇보다 일상에서 뿌리 내린 삶을 무대 위로 그대로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해녀 이야기'는 89세 해녀의 삶 그 자체예요. 처음에는 연기를 한다는 사실에 해녀 이모들이 부끄러워하시기도 하셨는데, 본인 삶을 자연스레 녹이고 관객분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치유를 받는다고 하셨어요. 89세 할머니는 엄청 우셨어요. '내 인생을 부끄러운 것만으로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죠. 이 공간에는 거짓이 없어요."


7.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출신인 해녀의 부엌 김하원(29) 대표는 해녀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적부터 해녀들과 자라났다. 서울로 유학을 간 김 대표가 고향 제주의 어머니로부터 해녀들이 힘겹게 잡은 해산물이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를 들은 게 ‘해녀의 부엌’ 출범 계기였다. 김 대표는 연극원 출신 동료들과 뜻을 모아 제주 해녀를 소재로 한 연극을 만들고 제주산 음식으로 메뉴를 만들어 제공하는 신개념 문화상품에 도전하기로 했다.


8. '해녀의 부엌' 공연을 만들기 위해, 김 대표와 친구들은 해녀 어멍들을 심층 인터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종달리 해녀 4명의 삶이 권 할머니의 '어멍이 해녀'(엄마는 해녀)를 포함해 4편의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모두 실제 주인공 해녀 어멍들이 극 마지막에 직접 출연하고, 관객들의 질문을 받아 답하며 토크쇼처럼 대화도 나눈다.


9. ‘해녀의 부엌’은 제주의 신선 농수축산물을 재료로 한 음식에 제주 해녀 이야기를 담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고 있다. 2019년 1월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 본점이 문을 열었고 북촌리 2호점은 지난해 11월 오픈했다. 극장식 레스토랑인 본점과 달리 2호점은 미디어아트 레스토랑으로 꾸몄다. 음식을 먹으며 공연을 보는 것이 특급호텔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 여기에 제주 마을과 해녀의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제주의 명소로 떠올랐다.


10. 뜻하지 않은 효과도 생겼다. 해녀의 부엌에 들른 관객이 종달리 바다에서 물놀이도 하고 주변 카페·식당도 들르니 동네 상권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부둣가에서 무슨 공연이냐며 마뜩치 않아했던 선주들을 설득하는 등 ‘해녀의 부엌’이 문을 열고 자리잡는 데 큰 역할을 한 종달리 김태민(64) 어촌계장이 말했다. “십수년 내 해녀 어멍들은 나이 들고 어촌은 기능을 잃을지도 몰라요. 해산물도 팔아주고 해녀들을 고용하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해녀의 부엌’은 우리 마을의 자랑이자 희망입니다.”


11. “어딜 가든 나는 용의 머리가 되겠다고 대답하곤 했다. 제주도로 내려온 것 역시 제주도에 시장성이 있어서 선택한 것이다. 환경이 나를 만들어주는 게 아닌 내가 환경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런 마음으로 창업을 한다면 좀 더 큰 그림을 만들거라 믿는다.”





* 공식 웹사이트

https://haenyeokitchen.com/


* 내용 출처

https://bit.ly/3R46IT9 (동아일보, 2022.03)

https://bit.ly/3C1IqEX (한겨레, 2020.12)

https://bit.ly/3dE2kwv (경주신문, 2021.10)

https://bit.ly/3dwheVH (서울경제, 2020.04)

https://bit.ly/3qZOWWB (뉴시스, 2020.11)

https://bit.ly/3Sayq26 (조선일보, 2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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