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일 동안, 오늘의 브랜드 #49.
1. 원래 한반도에서 개발된 명란은 소금과 고춧가루를 넣어 발효시켜 만든 젓갈이었다. 하지만 명태의 주산지인 함경도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해역을 분단으로 잃었고, 함경도 피난민들에 의해 강원도 고성과 속초에서 명태잡이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자원 남획과 수온 상승으로 인해 명태는 씨가 말라버렸다. 2008년부터 공식적으로 명태의 어획량은 0이었다. 명태가 사라지며 전통 명란에 대한 관심과 이를 계승하려던 노력도 함께 사라졌다.
2. 그 사이 일본에서는 명란의 발전이 일어났다. 부산에서 태어났던 가와하라 도시오라는 사업가는 한반도에서 먹었던 명란의 맛을 잊지 못해 후쿠오카에서 명란젓을 개량, 일본식 명란인 숙성절임 명란(가라시멘타이코)를 만들어냈다. 숙성절임 명란은 일본 특유의 가쓰오부시, 설탕, 일본 맛술 등을 중심으로 맛을 더욱 발전시켰고 일본 유통망 확장과 함께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숙성절임 명란은 한국으로 돌아와 명란의 주류가 됐다. 지금은 한국과 일본 모두 숙성, 절임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3. "1993년 부산 장림에 공장을 열었어요. 원래 아버지는 수산물 가공 회사인 삼호물산(현 CJ푸드)에서 생산기술자로 일하셨습니다. 공장장, 이사, 상무직을 거치셨고요. 삼호물산에서 일하면서 명란을 만들어 일본에 수출하셨어요. 그때 명란의 상품성을 봤다고 해요. 1992년 삼호물산이 부도난 후 아버지가 생산라인과 40여 명의 생산직원을 인수해 덕화푸드를 창업했습니다. 명란을 생산해 일본에 수출하는 게 목표였죠."
4. "일본 시장에서 승승장구하다 2013년 위기가 닥쳤어요. ‘아베노믹스’가 시작되면서 엔화 가치가 떨어졌어요. 수출을 할수록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죠. 세븐일레븐 납품 계약도 끝났고요. 매출이 급감했습니다. 그때부터 수출 대신 국내 시장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그 전부터 국내 시장에 대해 고민하셨습니다. 2006년 아버지가 저를 회사로 불러들이셨습니다. 국내 시장을 맡기려고요. 이후 건강이 크게 나빠지셔서 사실상 그때부터 제가 회사 일을 모두 맡았습니다."
5. 2016년부터 그렇게 만든 제품에 이름을 붙이고 소포장과 패키지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먹던 우리 고유의 명란을 복원한 ‘조선명란’과 일본식 ‘카라시멘타이코’를 한국화한 ‘그때 그대로 명란’, 고춧가루 없이 깔끔한 ‘백명란’, 숙성액을 넣는 ‘숙성고에서 갓 꺼내먹는 명란’ 등을 출시했습니다. 그런데 프리미엄 식품 시장이 커지고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시장 지형이 바뀌었어요. 새롭고 간편한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깔끔한 패키지에 소포장된 명란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2030 젊은 소비자들이 늘기 시작했어요."
6. 한국 전통의 명란 젓갈, 진짜 발효가 일어나야하는 형태로 만들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아직은 요리적 상상력이 부족한데, 아까 서양에서 먹는 엔초비와 비슷하다고 언급했지 않나? 그렇다면 엔초비가 들어가는 모든 요리에 그 대신 명란젓을 넣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걸 하려면 요리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고, 음식 분야의 전문가와 협업이 필요하다. 우리도 아카이브와 연구소를 통해 이렇게 명란의 맛과 인문학, 지역성 등을 융합해낸 제품을 개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7. 지난해 6월 명란 최대 강국 일본을 제치고 역대 최고가로 명란 낙찰을 따내는 데 성공해 화제가 된 기업이 있다. 바로 부산에 본사를 둔 명란가공회사 ‘덕화푸드’다. 다양한 명란 제품을 개발해 한국 명란을 알리는 한편, 덕화푸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 이른바 ‘여사님’들에 대한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유일한 기업이기도 하다. 독립연구가이자 덕화푸드의 CBO(Chief Brand Officer, 브랜드 이사)이기도 한 김만석 이사는 “제품의 단기적인 매출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같이 있는 사람들이 역사가 된다’는 믿음 아래 덕화푸드 여성 작업자에 대한 기록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 공식 웹사이트
* 내용 출처
- https://bit.ly/3E5iFVT (부산일보, 2022.09)
- https://bit.ly/3BZyfj6 (국제신문, 2019.06)
- https://bit.ly/3CmYyBh (부산일보, 2018.06)
- https://bit.ly/3E7dm8r (시사N라이브, 2020.12)
- https://bit.ly/3M0rhPj (hey POP)
- https://bit.ly/3C3Dnmb (부산일보, 2021.03)
- https://bit.ly/3E9Esvr (조선일보, 202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