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사진의 배경은 왜 흰색인 거지?’
‘컬러를 배경으로 하면 안 되나?’
‘꼭 굳은 표정이어야 하나?’
‘뽀샵(포토샵) 하면 안 되는 거야?’
사진을 찍던 김시현 작가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알게 됐죠. 주민등록증에 붙이는 증명사진 배경이 반드시 흰색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래서 그는 사람마다 배경 색을 달리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인물을 제외하고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부분이 배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피사체인 모델로 하여금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배경색을 직접 선택하게 했습니다. 촬영 전에는 고객과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표정이나 액세서리, 메이크업 등의 연출을 결정하게 했죠. 그렇게 촬영 대상자의 시각과 자기표현 의지가 담긴 세상에 없던 독특한 증명사진들이 하나 둘 완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사진 스튜디오 ‘시현하다’는 현재 지점 수가 15곳에 달할 정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치열한 예약 경쟁을 거쳐야 하죠. 특히 김 대표가 직접 찍는 사진의 경우, 30초 만에 한 달 예약이 다 차기도 합니다. ‘시현하다’에서 찍은 증명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정관념을 깨뜨린다는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민등록증용 증명사진만 해도 배경색이 분홍색, 주황색, 파란색 등 다양하기 그지없죠. 어떤 지인은 3년째 매년 시현하다에서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하더군요.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의 얼굴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라나요. 시현하다의 사진은 이렇게 최대한 그 사람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아스트로 차은우, 마마무 휘인, 박명수, 프로미스나인 새롬, 빅스 켄, 제이미, 이영지 등 연예인부터 쇼트트랙 국가대표 곽윤기 선수, 정치인 심상정까지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증명사진은 원래 19세기 범죄자를 잡기 위해 탄생했다고 전해집니다. 20세기 초엔 국가가 부랑자 등 하층민을 관리하기 위한 프로필 사진으로 진화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렇게 규격화된 형식미가 고매한 작가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그들 중엔 마르셀 뒤샹이나 앤디 워홀도 있었어요. 그들은 증명사진의 형식을 차용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SNS 시대가 도래하면서 증명사진에도 변화가 찾아왔어요. 당장 SNS에 가입하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이 '프로필 사진(프사)‘이니까요. 대개 5~6가지 SNS를 하는 2030세대들은 여기저기서 '프사'를 게재하라는 요구를 마주하곤 합니다. 심지어 업무용으로도 SNS를 많이 쓰면서, 자신의 카카오톡 사진을 고를 때조차 사람들은 신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증명사진의 주 사용처였던 여권이나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의 경우 살면서 남들에게 보여줄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중장년층은 현재 얼굴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몇십년 전 증명사진을 그대로 쓰는 경우도 적지 않아요. 가끔 공개되는 신분증 속 오래된 증명사진은 놀림 혹은 추억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굳이 전문 스튜디오가 아니라 해도 하루필름, 포토이즘, 인생 네컷 등 셀프 사진관을 찾아가 찍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죠. 혼자서 셀프 스튜디오 가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어졌고요. '혼토이즘', '혼셀픽스'라는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사람들은 이제 필요한 것을 사지 않습니다. 갖고 싶은 걸 사죠. 이건 이 시대에 사랑받는 브랜드들이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똑똑한 브랜드들은 이제 사람들의 숨은 욕망을 좇아 제품과 서비스로 세상에 선보입니다. 시현하다도 마찬가지에요.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세상에 웅변하기 위해 사진을 찍죠. 그리고 이런 브랜드의 시작엔 언제나 '남다른' 질문이 있곤 했습니다. 김시현 작가는 세상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았죠.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시현하다라는 브랜드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필요 때문에 사진을 찍지 않아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찾죠.
이것이 동네 사진관이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도 시현하다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성공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사람들의 숨은 욕망에 귀를 기울이세요. 당연한 것들에 질문을 던져 보세요. 역사상 가장 풍족한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소비자들은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제품과 서비스를 단순히 필요에서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증명사진, 아니 프로필 사진도 그 중 하나죠. 이제 엄마들은 꽃을 배경을 사진을 찍고, 아빠들은 아웃도어를 입은 채 사진을 찍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더 이상 남들처럼 살지 않아요. 사진 한 장에서도 자신이 온전히 드러나길 원하죠. 시현하다의 성공은 바로 그런 사람들의 욕구에 화답한 결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