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빛은 8분 만에 1억 5천만 킬로미터를 날아 지구에 도달한다. 그 빛이 식물이 광합성을 가능케 하고, 그 덕에 동물도 하루 하루 생명을 유지해간다. 세렝게티의 치타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 치타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생존을 위한 굶주림(hunger)이다. 넷플릭스에서 다큐 한 편을 보았다. 태양의 생성과 배고픈 치타 가족을 잇는 철학적 고찰이 흥미롭다. 이 다큐를 보면서 나는 내내 과학과 철학이 맞닿아 있다는 확신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됐다.
동물을 움직이는 것은 배고픔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보다는 조금 더 복잡한 동력으로 삼을 유지한다. 그건 바로 욕망이다.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서태웅과의 경쟁심이, 승리를 향한 절실함이 삶의 동력이다. 더 글로리의 송혜교를 움직이는 것은 복수다. 우리나라 대통령을 움직이는 것은 자신과 관계된 자들의 안위와 권력욕이겠지. 아무튼 인간은 안전과 배고픔이라는 생존의 욕구를 손쉽게 해결한 후 그 다음 단계의 욕구에 매달린다. 그것이 월가를 움직이고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고, 그 덕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다. 비록 유한하기 짝이 없는 덧없는 욕구지만 말이다.
브랜드는 단순히 경제적 논리로만 설명하기엔 아까운 소재다. 치타가 살아남기 위해, 새끼를 먹이기 위해 집요하게 먹잇감을 쫓듯이, 우리도 끊임없이 다양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밤낮을 고민하고 경쟁하고 경쟁한다. 다행인건 그 욕구가 너무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내가 새로 나온 스마트폰과 노트북의 사양을 찾아 헤맬 때, 내 친구는 버려진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복원하는 유튜브를 보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렇게 수리한 바이크를 타고 자연으로 나아가 속도감을 즐기고 기록을 남기곤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제품을, 서비스를 갈구하고 소비한다. 이러한 생태계는 마치 태양과 지구, 그 안의 수많은 동물들을 연결하는 태양계를 닮았다.
우연히 이 다큐를 보면서 느낀 점 하나는 '덧없음'이다. 유한함이다. 영원할 것 같은 태양도 50억 년 이후면 동력을 잃고 백색 거성으로 흩어져버린다고 한다. 우주 원래의 모습이었던 먼지와 가스로 돌아가는 것이다. 수성과 금성은 그 폭발로 사라지고 달은 그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지구를 도는 고리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결국 지구도, 그 안에서 먹이를 쫓던 치타도, 풀도, 그 풀을 뜯던 누우떼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는 아주 가끔씩 장례식장에서 이 불변의 진리를 맞딱뜨리곤 한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를 움직이는 욕망을 때로는 관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은 배고픔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통장을 채워주지도 않는다(관련된 책이나 강연을 하지 않는 이상). 그러나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수는 있다. 100만 원의 돈을 잃어버리고 그 절망감에 울부짖던 과거의 우리 어머니를 위로할 수는 있다.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그 욕망에 먹혀서는 안된다. 인생의 덧없음을 방랑으로 해결하는 자는 아주 소수다. 평범한 우리는 내일도 여전히 본능에 가까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치타처럼 달릴 것이다. 그리고 먹이를 입에 넣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삶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사색은 인간만의 특권이다. 나는 이 다큐를 보면서 그 유한함의 소중함을 깨닫고 위로를 받았다. 2편을 볼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