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인주와 스태플러는 누가 만들었을까?

수년 전 '스몰 자이언츠'라 불리는 강소 브랜드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수백 년 된 일본 교토의 브랜드들을 만나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이건 뭐 부채 하나를 만들어도 역사가 몇백 년씩 되었다고 하니 그 아우라는 어떻게 따라갈 수 있을지 감도 오지 않았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오래 된 기업이 백제의 후손이 만든 회사라는 거였다. 일본의 오래된 절을 수리하는 '곤고구미'라는 회사다. 대략 역사가 1400년 정도 된다. 내가 특별히 이런 일본 브랜드를 부러워한 이유는 하나다. 오랜 역사가 만들어낸 아우라는 기술처럼 카피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피스 코리아'란 회사를 취재하기로 했다. 이 회사는 스태플러와 인주 같은 사무 용품을 만든다. 회사에 다녀본 사람이라면, 아니 사업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브랜드를 써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변함없는 디자인, 오랙 역사로 유명한 이 기업의 설립 연도는 1959년이다. 대략 60년 정도 이상 된 회사인 셈인데 이런 회사가 우리나라에는 그닥 많지 않은게 현실이다. 하지만 오랜 역사보다 궁금한 그 이유다. 이 회사는 어떻게 그 오랜 세월을 견뎌내고 지금까지 왔을까. 디자인도, 심지어 로고조차도 익숙한 이 회사는 무슨 베짱으로 지금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고수하고 있는 것일까. 서너 번의 전화 끝에 대표 인터뷰가 결정되었을 때 나는 택시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뛸뜻이 기뻐서 고함을 지를 뻔 했다. 나는 이제 이 브랜드의 진솔한 숨은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새롭고 힙한 브랜드도 물론 흥미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일본 만큼은 아니지만 오래된 기업들이 없지 않다. 볼펜을 만드는 모나미의 인터뷰 기사도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오래된 회사 중엔 유학을 다녀온 2세들이 일으켜 세운 브랜드도 적지 않다. 삼진어묵, 덕화명란 같은 회사들이다. 디자인 경영으로 일어선 일광전구도 꼭 한 번 취재해보고 싶다. 이유는 하나다. 치고 빠지기 식의 트렌디한 브랜드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을 가능케한 힘의 원천이 알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오래 되었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오랜 역사의 이유가 타당하다면, 보이지 않는 혁신의 결과라면 이제 막 회사를 시작한 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 때 냄비 같은 민족이라는 비하를 스스로 했던 적이 있었다. 이것도 일제 치하의 잔재 중 하나다. 그러나 그 냄비 같은 근성이 경제 부흥과 민주화를 가능케 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부뚜막의 솥단지를 달굴 때이다. 60년 된 기업이 100년이 되고, 10년 된 회사들이 50년을 지향하는 문화가 절실한 때다. 지속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철학이 있어야 한다. 내가 왜 사업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어렵고 힘든 위기를 만들었을 때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 이것을 브랜드 용어로 Do's & Don'ts라고 한다.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단기간의 매출을 위해서 성분을 속이고 용량을 속이는 회사가 최근에 기사화된 적이 있었다. 아쉽게도 그들에겐 철학이 없었다. 나는 그런 브랜드가 결코 오래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 확신한다. 그러니 이제 긴 호흡으로 비즈니스를 해보자. 찰나의 성공을 거둔 이들에게서 눈길을 거두자. 이 땅에 다시 한 번 곤고구미 같은, 백제의 후손이 만든 브랜드가 탄생하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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